이제까지 5일전부터 가능하던 기차표 예매가 10일전부터 가능하도록 오늘부터 변경되었습니다.
Z, D로 시작하는 기차표는 모두 10일전부터 예매가능하고, 베이징에서 홍콩 구룡까지 운행하는 기차는 20일전부터 예매가 가능합니다.
한국은 요즘도 이런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제가 대학 다닐때(84~88년)에는 대개 첫강의 시간에는 교수인사와 한학기 강의에 대한 개요 그리고 교재소개로 간략하게 수업을 끝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 대학다니는 분들은 어떠신지요?
중국대학(중의약대학만 그런게 아니라 다 그럴것이라고 생각듭니다만)은 첫시간부터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됩니다. 교재소개 교수소개 이런것은 아주 짧게 칠판에 교수 자신의 이름정도 적는것(이렇게 하지 않는 분이 더 많았습니다)만 하고 1페이지부터 수업에 돌입합니다.
한국에서 대학다닐때는 교재전체를 한학기에 모두 공부한적이 거의 없는 반면에 중국은 한학기 18주동안 교재 첫페이지부터 마지막페이지까지 한권을 다 배웁니다.

한국은 지금도 그런줄 알고 있습니다.
울애들만 봐도
개강 첫날은..
울딸도 그렇게 공부하겠네요..그럼..ㅎ
8일이 개강이라 하던데요.

어느학교에 다니는지 몰라도 조금 늦게 하는군요. 저는 오늘 개강했답니다.
한국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군요. 모든게 변하는데 이런점은 변하질 않고 있다니..


일반인이 받을수 있는 중국 비자의 종류는 모두 8가지가 있다.
1. 여행비자(L비자) : 중국을 여행하거나 중국에 있는 친척을 방문할때 발급받는 비자.
2. 방문비자(F비자) : 중국에 강의를 하거나 사업목적 또는 과학문화교류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이 받는 비자. 중국체류기간이 6개월 이내의 사람에게 발급.
3. 유학비자(X비자) : 중국에 유학하거나 실습등의 목적으로 6개월 이상 체류시 발급받아야 하는 비자. JW201이나 JW202표가 필요하며 학교의 합격통지서와 외국인건강검진이 필요하다.
4. 취업비자(Z비자) : 중국에 있는 기업의 임직원이나 취업하는 사람과 가족에게 발급.
5. 월경비자(G비자) : 중국을 거쳐가는 사람들을 위한 비자.
6. 승무원비자(C비자) : 항공기 승무원에게 발급되는 비자.
7. 기자비자(J비자) : 신문 방송등의 기자에게 발급되는 비자. J-1는 상주기자, J-2는 상주하지 않는 기자에게 발급.
8. 거주비자(D비자) : 중국에 거주하려는 외국사람에게 발급되는 비자.
- 올림픽 준비 완료
- 중국 외교 '올림픽' 시작
- 지하철 오늘부터 내일 마지막차까지 쉼없이 운행
- 중국선수단 기수로 '야오밍' 재낙점
- 올림픽 기념우표 발행 한사람당 한세트 구입가능
- 전문 전취덕 하루매상 50만위안 달성 4000여명 방문
- 최고기온 32도, 최저기온 24도 구름많고 흐림 짧은시간 비
- 오늘 오성홍기 하강식 오후 7시 20분
- 내일 오성홍기 게양식 오전 5시 19분
* 오늘로 베이징 소식을 전하는 포스팅은 중단하겠습니다.
- 오늘 올림픽 귀빈 항공기 200여편 집중 도착
- 올림픽 개막식 주제가 리우환 사라브라이트만이 부른다
- 개막식전에 짧게 비 내릴듯
- 개막식날 기상이변시 메인스타디움내 사람들에게 날씨관련 문자메시지 전송
- 베이징내 성화봉송 첫날 30만명 구경
- 개막식 당일 병원진료는 정상운영
- KTV등 가라오케 업소 저작권료 낸다. 하루에 최고금액 11.1위안
- 최고기온 31도, 최저기온 24도 흐리고 구름많음
- 오늘 오성홍기 하강식 오후 7시 21분
- 내일 오성홍기 게양식 오전 5시 19분
- 올림픽 개막식날 베이징 일원 하루 휴일지정. 단 결혼증명발급은 정상진행
- 8월 8일 날씨 맑음.
- 국제올림조직위원회 "북경공기 선수건강에 지장없다"
- 8일 개막식 끝난뒤 11시 31분에 북경전역서 축하 불꽃놀이 실시
- 식용농산품 가격 4주째 하락
- 중앙은행 은행신용대출 규모 5% 상향조정, 지방은행은 10%
- 최고기온 34도, 최저기온 25도 구름많음
- 오늘 오성홍기 하강식 오후 7시 22분
- 내일 오성홍기 게양식 오전 5시 18분
- 베이징내 성화봉송에 841명 참가
- 신강 경찰습격테러로 16명 사망, 16명 부상
- 8일 하오4시 올림픽메인스타디움 정식개방
- 오늘 오후에 마지막 개막식 리허설 실시
- 아직까지 올림픽 가짜표 발견못해
- 베이징올림픽 준비에 모두 3000억위안 쏟아부어
- 교황 올림픽 성공 축복
- 사법고시 응시인원 37만명, 지난해 보다 8만명증가
- 중국연통 광고에 아이폰 모양 핸드폰 등장
- 최고기온 32도, 최저기온 24도 구름많고 맑음
- 오늘 오성홍기 하강식 오후 7시 23분
- 내일 오성홍기 게양식 오전 5시 16분
- 올림픽 개막식날 날씨 구름많이 끼이고 비올 가능성도 있음
- 성화봉송으로 6일 고궁을 기점으로 20개 도로 교통통제
- 왕통, 소링통 포기않해, 베이징내 소링통 이용자 80만
- 나방 SOHO일대 공습
- 최고기온 34도, 최저기온 24도 맑다가 구름많음
- 오늘 오성홍기 하강식 오후 7시 24분
- 내일 오성홍기 게양식 오전 5시 15분
- 공공기관 차량 매주 1회 운행중지
- 배기량 적은차 소비세 줄이고 큰차는 반대로 증가
- 길림빌딩 장백산호텔로 이름변경
- 동직문 공공교통(지하철,공항철도,버스)환승빌딩 정식운영돌입
- 팔달령까지 운행하는 S2철도노선 개통
- 올림픽 개막식때 비올경우 인공감우실시
- 싱가포르 올림픽 대표단 싣고 A380 수도공항 도착
- 1,2일 양일간 공기질량 양호
- 외국기자 천안문광장 방문취재시 허가받아야
- 최고기온 35도, 최저기온 23도 구름많고 맑음
- 오늘 오성홍기 하강식 오후 7시 25분
- 내일 오성홍기 게양식 오전 5시 14분
* 오성홍기 하강식,게양식은 일몰,일출시간에 맞춰서 시작됩니다.
* 이번 올림픽 기간동안 매일 아침에 베이징 소식을 몇가지 묶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이 의료일원화를 이루게 된 계기는 제가 책에서 밝혔듯이 1950년대 초반에 북경 근방에서 3년간 지속해서 발생하여 퍼지는 유행성 뇌염을 지금으로도 양방의학으로는 쉽지 않은 병인데 당신 중국의 양방의학적 체계와 시설 그리고 양방의학자체의 한계로 인하여 속수무책으로 대응할 수 없던 것을 중의사들이 나서서 무리없이 모두 치료를 하게 됨으로서 모택동을 비롯한 모든 중국 정치 지도자들과 국민들에게 충격과 경악 그리고 중의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론 양의사들도 양방의학의 한계와 중의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3년간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데모로 집단이익만을 지키기 위하여 중의학이 우월하다고 강제를 핀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택동은 모든 양방의사들로 하여금 직급과 수준에 관계 없이 모두가 일년간 중의학 강의를 듣게 만듭니다.
양방의료계의 최고급 의사들에게는 중의학계의 최고의 명의들로 구성된 강사진의 강의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확연한 중의학의 이론체계가 양의학계의 최고직급과 최고실력의 의사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되며 실제 임상에서 수많은 난치병을 치료한 예들이 입증되고 설명되어집니다. 이렇게 양방의사들의 중의학에 대한 이해가 싹트기 시작하고 상호 교류와 인정 나아가 의료일원화라는 기틀이 잡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중국에서도 물밀듯이 밀려드는 양방의학에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양방의학은 정치지도세력에 의하여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국민당 정부는 중의학체계를 부정하고 폐지하려고 시도하였고 만주일대와 중국일부를 점령한 일본정부도 완전히 폐지하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중국 각지에서 양방의학이 치료하지 못한 수많은 질병들을 양의사들이 부정할 수 없이 명백하고도 객관적으로 치료를 함으로써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수많은 사례를 일일이 다 밝힐 수는 없습니다.
“5.4 운동”의 주창자로 신문화를 주장하면서 중의학이 비과학적이라고 중의 철폐를 앞장서서 주장하였던 그 유명한 후쓰(胡適. 호적)가 1920년 당뇨병과 신장염으로 북경에서 제일 수준 높은 양방병원인 협화의원에 입원하여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은 양방의사들부터 더 이상 치료를 할 수가 없으니 후일을 준비하라는 최후 통첩을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친지들이 중의 치료를 권하였으나 번번히 중의학이 비과학이라고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최후로 친지들이 이제 죽을 수밖에 없는데 더 이상 무엇을 못해보겠냐고 강권하여 명의 루중안(陸仲安)을 초빙하여 치료를 받고 완치가 됩니다. 이에 협화의원의 전문의들이 모여 모든 검사지표를 확인하고 완치가 되었다고 판정을 내립니다. 이후에도 후쓰는 40년을 더 살아 활동하게 됩니다. 그는 물론 더 이상 중의학의 폐지를 주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양방의사들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객관적이고 명백한 사례들을 통하여 양의사들이 중의학을 받아들일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지 않다면 아무리 모택동의 강제로 시작된 사업이라 할지라도 성공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 자세한 글은 원래의 글이 위치하고 있는 달빛한의원 김동영원장의 글을 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