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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에서 왕정으로

다음은 김용옥선생이 1월5일부터 문화방송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강연을 앞두고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저는 김용옥선생의 글에 대단히 동감을 표합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왕정으로 다시 돌아와서 다리를 붙잡는 것들을 싹 쓸어주면 더 없이 고맙겠지만 그래서는 이땅에 민주주의가 다시 오지는 않겠지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획득되는것이지, 강압적인 방법으로 강제하는 민주주의 이건 독재의 다른 이름이겠지요.

다음은 김용옥선생의 칼럼글 전문입니다. ‘, ‘
‘王政에서 민주로’역사의 성취바로봐야

도올 ‘우리는 누구인가’방송강의를 시작하며

김용옥기자 doholk@munhwa.com

나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막바지 고비에서 단식투쟁을 했다. 그리고 ‘왕정이냐 민주냐?’라는 성명문을 발표하였다. 언론계의 대선배이신 김중배선생께서 그때, ‘동아일보’에 “근자에 보기 드물었던 명쾌한 글이다. 심금을 울린다”라고 쓰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1987년 5월 4일의 일이다. 그 글은 일본학계에까지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왕정이냐 민주냐?’라는 것은 단순히 독재정권타도를 위한 구호적인 외침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삶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온 깊은 사상의 한 이정표였다. 그것은 내가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는 중요한 틀, 즉 나 도올의 사관(史觀)을 제시하고 있다. 칼 맑스는 역사를 5단계로 구분하였다. 원시공산제→노예제→봉건제→자본제→공산제로 그러나 나는 역사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맑스의 서양사 도식은 전혀 서양이외의 문화권에 적용될 가치가 없다. 그리고 서양인 자신의 역사까지도 심각하게 왜곡시킨다.

나는 우리의 역사를 왕정(monarchy)과 민주(democracy)라는 두 도식으로 본다. 그런데 이 도식은 통시적(diachronic)인 두 단계가 아니다. 그것은 공시적(synchronic)인 역사내면의 보편성이다. 다시 말해서 왕정과 민주는, 권력의 집중과 권력의 분산을 의미하는 두 체제로서 인류사의 모든 시점에 공재(共在)하는 것이다. 역사의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란 단지 왕정적 요소가 지배적인 상태에서 민주적 요소가 지배적인 상태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양자의 관계는 이런 의미에서 태극적, 즉 음양상보론적이다. 조선의 역사는 단군이래 오늘날까지 단 하나의 패러다임 즉 왕정의 체험만을 지속해왔다. 조선왕조는 물론, 일제식민지를 거쳐, 이승만, 김일성,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에 이르기까지 모두 왕정이라는 한 패러다임에 속해 있었다. 이승만•박정희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들은 조선조의 왕보다 훨씬 더 막강한 권력을 소유하였고 휘둘렀다. 박정희의 아들임을 자처했던 전두환도 물론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는 왕이었고 폭군이었다. 김영삼•김대중도 민주에 대한 갈망은 있었으나, 왕정의 패러다임 속에서 성장한 전형적인 군주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노무현은 다르다. 노무현은 과연 왕인가? 대통령인가?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답변할 것이다: “노무현은 분명 왕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와같은 코멘트를 서슴치 않고 첨가할 것이다: “그렇지만 노무현은 능력있는 대통령은 못되는 것 같다.”

노무현체제는 ‘근원적 패러다임 전환’의미

나는 우리역사가 노무현이 능력있는 대통령이 아니라는 사실보다 노무현이 왕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 본질적인 주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통령으로서의 능력’이라는 주제는 거의 ‘왕권’과 그 실내용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민주라는 패러다임을 이땅에 구현하는 최초의 대통령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역사는 유사이래 최초로 왕정의 시대에서 민주의 시대로 터닝하고 있는 것이다. 왕이 아니라는 사실 이 하나의 실천이 너무도 너무도 어려웠던 것이다.

내가 노무현을 대통령취임후 50일째 인터뷰했을 때, 그는 내가 국정의 부동(浮動)에 대한 책임을 묻자,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자제하는 것이 개혁의 시작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러한 그의 자세를 ‘무위’(無爲)의 철학이라 표현했는데, 요즈음 우리 국민은 그의 ‘무위’를 단순한 ‘무능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인기의 하락에 대한 노무현의 책임은 막중하다. 그러나 민주를 갈망했던 우리 국민은 막상 민주가 오자, 왕정을 더 그리워하는 것 같다. 대통령으로서의 권한행사와 지도력을 갈망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과연 대통령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노무현은 대통령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왕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분명 대통령으로서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지도력을 봉쇄하고 있는 것은 사실 그 자신이라기 보다는 거대야당과 거대언론이다. 그들은 노무현을 너무도 처절하게 감정적으로 증오하는 것 같다. 그냥 무조건 싫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도중하차까지 점치고 있다. 이것은 또하나의 우리역사의 자기배반이다. 자기가 만든 지도자를 자기의 손으로 매도하고, 자기가 만든 역사의 전환을 자기 손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정치 민중갈망은 유교적 仁의 실현

우리국민은 지나치게 자기가 만든 역사의 성취를 부정하고 비하시키는데 익숙해 있다. 너무도 자신의 업적을 평가할 줄을 모른다. 현재 우리 국민은 우리역사의 실상을 현실보다 훨씬 더 어둡게 바라보고만 있다. 나의 MBC 한국사상사강의는 기본적으로 우리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역사가 소수 정객들의 농간에 의하여 전개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탁월한 사상가들의 정성이 쌓아올린 공든탑이라는 것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혼돈스러운 현실도 이러한 유구한 전통의 연속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창신(創新)의 위업일 뿐이라는 것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도덕적인 정치의 구현을 위하여 이토록 순수하게 발버둥치고 있는 민족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것은 다름아닌 조선왕조 유교문화전통의 연속성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인(仁)의 실현이다!

2003년 12월 31일 오후 2시 여의도 녹화장에는 예상을 뒤엎고 500여명의 방청객이 몰려들었다. 내 녹화 D스튜디오는 300여명 기준으로 세트를 짠 것인데 하는 수 없이 뒷벽을 터버리고 사람들을 장외에 더 앉히는 소동을 벌여야만 했다. 세트의 구도와 느낌은 완벽했다. 그리고 스텝들과의 호흡도 너무 잘 맞았다. MBC에서 처음 녹화해보는 느낌 또한 신선했다. 그리고 청중들의 진지한 열기는 강의도중 내내 나로 하여금 건강한 땀을 쏟게 만들었다.

이날 내가 강의한 내용은 ‘독기학설’(讀氣學說)이라는 나의 저술을 중심으로 과연 실학(實學)이라는 역사서술 개념이 정당할 수 있는가에 관한 논란을 주제로 하고 있다. 조선역사에 실학이라는 조직적 운동이 존재한
이 없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20세기 역사학의 개념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실학이라는 사상운동이 사실로서 존재했던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학이라는 역사학적 개념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도식에 지배당하고 있다. 실학〓근대〓자본주의맹아〓반주자학!

비운의 소설가 이상은 ‘날개’에서 말한다: “19세길랑 봉쇄하여 버리시오!” 나 도올은 말한다: “근대일랑 봉쇄하여 버리시오!” 이제 서양의 역사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에 우리역사에서 ‘근대’를 찾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는 ‘근대’를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우리역사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근대’를 버릴 때만이 소위 근대 이전의 모든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진정하게 의미있는 현대사로서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크로체의 다음과 같은 말을 좋아한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오직 우리자신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희망만을 이야기해야 한다. 올 갑신년 MBC슬로건이 ‘희망한국’이란다. 그리고 문화일보, 올 갑신년 한해동안도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듬뿍 선사하는 정론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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