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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성문 이야기

오늘 뉴스속보를 통해서 국보1호인 숭례문(남대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이 불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좋은 소식만 들려도 시원찮은 판국에 숭례문이 빨리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숭례문 소식을 들으면서 베이징의 성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베이징에는 “내구외칠”(內九外七)이라고 해서 내성쪽으로 성문이 9개 외성쪽으로 성문이 7개가 있었습니다. 근대화로 인해 몇몇은 없어지고 거리이름으로만 남은것으로 압니다.

內九는 내성의 아홉문으로 전문(정양문), 선무문, 부성문, 서직문, 덕승문, 안정문, 동직문, 조양문, 숭문문입니다. 外七은 외성의 일곱문으로 동편문, 서편문, 광거문, 광안문, 좌안문, 우안문, 영정문의 일곱문입니다.

옛날 명청시대에는 이런 성문으로 드나드는 규정이 꽤나 까다롭고 엄격했다고 합니다. 예를들면 숭문문으로 드나들수 있는 수레는 술을 실은 수레만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전통문화속에서 술은 생발(生發)을 의미하기 때문에 동쪽에 있는 숭문문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서쪽에 있는 선문문은 형벌수레(刑車)만이 드나들수 있었습니다. 선무문은 숙살(肅殺)의 기를 지켜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풍수학상 북문은 열어둘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북쪽은 수장(收藏)의 의미가 있어 그렇습니다. 내성의 북문은 덕승문과 안정문입니다. 이 두문은 평상시에는 절대로 개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두문도 특별한 사정이 있을때는 이문으로 드나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 생겨 개방 하더라도 두문을 동시에 개방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이 문을 개방했을까요. 군대가 출정할때 이문을 이용해서 나가고, 승리하고 돌아올때 이문을 이용해서 돌아왔습니다. 군대가 출정할때는 안정문을 이용했습니다. 왜 안정문을 이용했을까요. 출정나가는 군대는 먼저 심신안정이 바로 승리를 보증한다고 보아서 안정문을 이용했습니다. 군대가 승리하고 돌아올때는 덕승문을 이용해서 돌아왔습니다..

“내구외칠”에 자금성의 4개문을 더해 “내구외칠황성사”(內九外七皇城四)라고도 합니다. 황성의 사문은 동쪽의 동안문(지금의 동화문), 남쪽의 천안문, 서쪽의 서안문, 북쪽의 지안문을 가르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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