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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 카테고리의 글

“중용(中庸)”을 전자책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연재했던 “중용(中庸)”을 전자책으로 묶어서 펴냈습니다. 중용 내용 전체를 한꺼번에 보고싶으신 분께서는 전자책을 구매해 주십시오. 블로그에는 한글번역만 실려 있지만 전자책에는 한문 원문도 실려있습니다.

구입은 이곳이나 알라딘 Yes24등 전자책을 판매하는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저곳에 올린지는 몇달 되는데 아무곳에도 알리지 않았는데도 찾는 분이 더러 계시네요.

앞으로도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들을 전자책으로 묶어서 펴낼 생각입니다. 많은 분들의 성원을 바랍니다.

[2012.10.27. 내용추가]
기존에 올린 전자책 내용이 마음에 들지않아 삭제를 요청했고 더이상 온라인에서 판매하지 않습니다.
제가 번역한 중용(中庸)은 이 사이트를 후원하시면서 아이패드를 사용하시는 분이 요청하시면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중용中庸 제33장

《시경 위풍 석인》편에서 말했다. “안에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밖에는 보통의 겉옷을 입는다.” 이것은 아름다운 옷의 색과 무늬가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받들어 행하는 큰 도는 밖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것처럼 보여도 매일매일 분명하게 밖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소인이 연연해 하는 작은 도는 비록 밖으로는 멋있게 보여도 매일매일 조금씩 없어지고 망해간다. 군자가 받들어 행하는 대도는 자연스럽고 담담해서 사람들이 싫어함이 없으며, 형식도 간단해서 문채를 안에 감추고 있으며, 온아하고 순리에 맞아 조리가 있다. 먼것은 가까운곳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도리를 깨닫고, 다른 사람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자신의 도리로 부터 시작됨을 알고, 작고 감추인것이 밝은 결과의 도리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것들로 성인의 도덕 경계에 들어갈 수 있다.

《시경 소아 정월》편에서 말했다. “물속의 고기들이 비록 깊은곳에 몸을 감춰도 명확하게 드러나 보인다.” 그러므로 군자는 항상 스스로 반성하여 부끄러움이 없으며 마음에 불만족이 없다. 군자는 일반인이 따라잡을 수 없는 곳에 있어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곳에 있을때에 자기에게서 더 엄격함을 추구한다. 《시경 대아 억》편에서 말했다. “홀로 방에 거하는 때에 마음을 밝게하여 집안의 어두운 곳의 신명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군자는 행동하지 않을 때라도 일을 함에 공경하는 마음을 한시라도 잊어버림이 없다. 말을 하지 않을때라도 사람에게 성과 믿음을 다하는 마음으로 섬긴다.

《시경 상송 열조》편에서 말했다. “묵묵하게 말없이 고하고, 신명을 감동시키고, 당시의 사람들은 엄숙하고 조용하여 다툼이 없었다.” 이러므로 군자는 상을 주지않아도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장려한다. 화내지 않아도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형틀도구만 보아도 경외한다. 《시경 주송 열문》편에서 말했다. “그 아름다운 덕성을 높이니 제후백관이 자연스럽게 모두 본받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공경함을 두텁게 하면 천하국가는 자연스럽게 태평할 것이다.

《시경 대아 황의》편에서 말했다. “나는 너의 빛나는 덕행을 마음속에 품으며 그래서 네가 큰 구령소리와 엄격한 기세없이 백성을 다스린다.” 공자가 이를 평하여 논했다. “구호와 기세를 사용해서 백성을 교화하는 것은 아주 지엽말단적인 일에 불과할뿐이다.” 《시경 대아 증민》편에서 말했다. “덕행으로 백성을 감화시키는것이 가볍기가 마치 털오라기와 같다.” 사실 털오라기는 가볍지만 그 모양으로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시경 대아 문왕》편에서 말했다. “위로 하늘이 만물을 낳고 생장 변화시켜 키우지만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냄새도 없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최고의 경계에 도달한 것이로다!

이걸로 중용1장부터 33장까지 번역을 마칩니다.

중용中庸 제32장

천하에 참된 성의 최고 경지에 도달한 성인이 있어 천하를 다스리는 근본대법을 창제하고, 천하의 근본대덕을 수립하고, 천지의 만물을 변화시키고 키우는 도리를 잘 알게 된다. 이 성誠이 없다면 어디에 의지할수가 있겠느냐? 성실하고 간절하고 순수한 그의 인애한 마음이여! 만약 실재로 총명과 지혜에 통달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덕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누구가 천지의 참된 성의 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중용中庸 제31장

오로지 천하의 가장 위대한 성인만이 그 총명과 지혜가 밝고 밝으며, 깊고 멀리 달할수 있어 하늘로 부터 부여 받은 군자의 위치에 거하면서 아래로는 백성들을 다스린다. 너그럽고 두텁고 온화하며 부드러운 인仁으로 천하만물을 포용한다. 노력하여 강해지기를 꾀하여 더욱 강하고 용맹하고 굳센 그 의義로써 세상의 큰일을 심사숙고하여 결정한다. 단정하고 장중하고 또 올바른 위치를 잘 지키는 그 예禮로써 타인의 존경을 받는다. 문장의 조리가 분명하고 생각이 주도면밀하고 밝게 살피는 그 지智로서 옳고 그름과 삿됨과 바름을 판별한다.

위대한 성인은 그 도덕이 넓고 또 자세 하고 깊다.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샘물과 같이 끊임이 없어 어떤곳 어떤시기라도 모두 드러난다. 그 넓은것으로는 경계가 없는 푸른 하늘과 같고, 그 세밀한 것으로는 아주 깊은 심연과 같다. 그가 위로 드러내면 존경을 표시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말을 하면 믿고 따르지 않을 사람이 없다. 행동을 하면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그의 명성이 중국을 뛰어넘어 사방각지의 소수민족부락에 까지 미친다. 그래서 배와 마차가 닿을수 있는 곳, 사람이 다닐수 있는 곳, 푸른하늘이 덮을수 있는 곳, 대지가 능히 싣을수 있는 곳, 해와 달이 비추는 곳, 서리와 이슬이 떨어지는 곳과 무릇 피가 돌고 숨을 쉬는 사람이라면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으며 친하지 않을수 없다. 그래서 성인의 도덕은 가히 하늘과 짝하는 것이다.

중용中庸 제30장

공자는 당요와 우순의 전통을 받들어 논술하고, 주문왕과 주무왕의 예의제도를 본받아 이를 널리 알렸다. 위로는 하늘의 때에 맞게 운행하는 규율을 따르고, 아래로는 물과 흙의 지리적 환경에 의거해서 그의 덕이 하늘과 땅의 모양과 같아 싣지 못하는 것이 없고, 덮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서로 교체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마치 태양, 달이 서로 더욱 밝게 비춰주는 것과 같다. 하늘과 땅사이에서 만물이 공동으로 생장발육하여 서로 해치지 않으며, 우주중의 큰도가 각자의 규율을 지켜 서로 충돌되지 않는다. 작은 덕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길게 흐르고, 큰 덕은 두텁고 실해서 만물을 변화시키는 큰힘이 끝이없다. 이것이 바로 천지가 위대한 까닭이다.

중용中庸 제29장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려면 반드시 3가지 중요한 일(예악정의, 법도창제, 문자고정)을 해야 다스림에 과실이 적을것이다! 앞선대의 성왕이 제정한 예의제도가 아름다울지라도 그 연대가 오래되면 이미 검증할 수가 없게된다. 검증할 수가 없으면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백성은 복종하지 않는다. 천자의 자리에 있지않은 성인이 주장하는 예악제도가 아무리 아름답고 좋을지라도 존귀한 지위가 없다. 존귀한 지위가 없으면 사람들이 신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신임하지 않으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다. 그래서 군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의 가장 근본은 먼저 자기자신으로 부터 시작하여 백성들이 검증해서 확인하는 것이다. 하,상,주 삼대의 예악제도를 조사하여 어떤 차이나 잘못이 없다면 이를 다시 사용해 하늘과 땅사이에 실시해도 객관규율에 위배됨이 없을것이다. 점을 쳐 물어본것을 귀신과 비교해도 어떠한 의문이 없고 백세대 이후에 성인이 나타나길 기다려도 미혹됨이 없을것이다.

귀신에게 물어 어떠한 의문도 없다면 하늘의 도리를 깨달은 것이다. 백세대이후에 성인이 나타나길 기다려도 미혹됨이 없다면 사람의 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움직임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천하의 법칙이 되고, 그의 행위는 대대로 세상사람의 규범이 되고, 그가 말하는 것은 세세토록 세상사람의 준칙이 된다. 그로부터 멀리있는 사람은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며, 가까운 사람은 한오라기의 싫어함도 없다.

《시경 주송 진로》편에서 말했다. “(기,송 두나라는 하, 상 두왕조의 후대이다) 본 나라의 사람들은 증오가 없으며 주왕조대의 사람도 싫어함이 없도다. 정사를 돌봄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근면하여 영원토록 아름다운 명예를 지킨다.” 군자는 일찍부터 이런 일을 하여 아름다운 이름이 천하에 이르지 않는곳이 없다.

중용中庸 제28장

공자가 말했다. “어리석은 자들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만 하고 남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 비천한 자들은 독단적으로 전횡하는것을 좋아한다. 지금 이 시대에 생활하면서 고대의 예의제도로 돌아가자고 집요하게 주장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반드시 그에게 멸망의 화가 내릴것이다.”

만약 천자의 지위에 있지않다면 예악을 정의할 권한이 없으며, 법도를 만들 권한도 없으며, 문자를 정할 권한도 없다. 현재 세상의 수레들의 궤도는 표준으로 모두 같으며, 글을 적는 문자도 서로 같으며, 윤리도덕의 준칙도 모두 같다. 천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만약 성인의 인품과 덕성이 없으면 감히 예禮를 제정하거나 악樂을 만들수가 없다. 성인의 인품과 덕성이 있어도 만약 천자의 지위가 없다면 역시 예禮를 제정하거나 악樂을 만들수가 없다.

공자가 말했다. “나는 하나라의 예악제도에 대해 말할수 있으나 그 하나라를 이은 후예인 기나라의 어디를 충분히 검증해봐도 나는 찾을수가 없다. 나는 은나라의 예악제도를 배웠지만 은나라의 후예인 송나라 어디를 고증해봐도 조금이라도 보존되어 있지 않다. 나는 주나라의 예악제도를 배웠는데 지금 우리사회에서 실행중인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주나라의 예악제도를 따르고 지키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용中庸 제27장

성인의 도가 위대하도다! 웅장한 기세로 하늘과 땅사이에 충만하여 만물을 생성하여 키우고 성장시켜 그 숭고함이 하늘에 이르는 도다. 진실로 너그롭고 풍부하여 그 도가 크고 크도다. 예禮의 대강이 삼백여 항목이고, 예禮의 세목에 삼천여 조가 있다. 반드시 성현이 나타남을 기다린 뒤 실행한다. 그래서 만약 지극히 높은 덕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지극히 높은 도가 그에게로 모이지 않는다. 그래서 군자는 하늘로 부터 부여 받은 고유한 덕성을 받들고 높여서 묻기를 좋아하고 배우기를 권하기에 힘쓴다. 도의 넓고 넓음이 발현되는 넓은 경지에 도달하고, 무궁무진한 도의 심오함이 자세한 작은 경계에 도달한다. 그 높고 밝은 심오한 도리를 추구하여, 일의 이치가 평범한 도리에 부합한다. 때에 맞춰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더 갈고 닦아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 데로 나아간다. 두텁고 충실한 본질을 기초로 수양을 해 예의를 숭상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윗자리에 있을때 교만하지 않으며, 아랫자리에 있을때 그 행하는 바가 잘못됨이 없다. 국가정치가 맑고 밝을 때에는 어떠한 계책을 내놓더라도 국가가 흥성하는데 사용되어지고, 국가정치가 혼란한 시기에는 말하지 않고 침묵하여 자기몸을 스스로 보호한다. “시경 대아 증민”편에서 말했다. “도리에 도달하여 통하면 지혜로와서 자신의 몸을 능히 완전하게 보전한다.” 이것이 바로 이런 의미를 말한것이다.

중용中庸 제26장

이러므로 가장 높은 경지의 참된 성은 영원히 쉬지 않는다. 영원히 쉬지 않아 오래도록 운행한다. 오래도록 운행하여 효험이 있다. 효험이 있으면 유구하여 멀고 멀다. 유구하여 멀고 멀면 넓고 깊다. 넓고 깊으면 높고 밝다.

넓고 두터워서 만물을 싣을수 있다. 높고 밝아서 만물을 다 덮을수 있다. 유구하여 멀고 멀어 만물을 만든다. 넓고 두터운것은 땅과 짝하고, 높고 밝은것은 하늘과 짝한다. 유구하고 아득히 먼것은 천지의 끝이 없는것처럼 영원히 있을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면 드러낼 필요도 없이 스스로 밝게 드러나며,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변화하며,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자연스럽게 만물이 이루어 진다.

하늘과 땅사이의 도리는 한글자로 능히 귀결시킬수 있는데 바로 이 하나의 글자가 “성誠”이다. 이 의미를 말하자면 그것은 본래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그래서 만물을 변화시켜 태어나게 하는것을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사이의 도리는 넓고, 두텁고, 높고, 밝고, 길고, 오래된 것이다.

하늘로 비유하자면 하늘을 좁게 보면 불과 몇몇개의 별들로 이루어진것처럼 보이나, 무궁무진한 하늘전체는 태양, 달, 별들이 모두 그 위에 걸려있고, 세상의 만물이 모두 덮혀 있을수 있다. 땅에 비유하자면 땅을 좁게보면 불과 한줌의 흙을 합쳐놓은것처럼 보이나, 끝없이 넓고 광활한 땅전체는 서악화산을 싣고도 무게를 무겁게 여기지 않으며 모든 강과 호수 바다를 모아도 물이 새지 않아 세상의 만물이 모두 다 실리어 있는것이다. 다시 산으로 비유하자면 산을 좁게 보면 불과 하나의 작은 돌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나, 그 광활하고 높은 산전체는 초목과 꽃들이 모두 거기서 생장하고, 금수가 그곳에서 생활하며, 금은보화를 담고 있는 곳이다. 물로 비유하자면 물을 아주 적게 보면 한숟가락에 불과한 처럼 보이지만 물전체의 그 깊음은 예측할수가 없어서 자라, 교룡, 어별이 모두 그곳에서 생존하며 각종 생산물과 재화가 그곳에서 증식해서 나온다.

《시경 주송 유천지명》편에서 말했다. “하늘의 도리여, 깊고 멀어서 그 경계에 멈춤이 없구나! “ 이것은 하늘이 그 하늘된 바의 도리를 말한 것이다. 같은 시편에서 말했다. “아! 밝게 드러남이여! 주문왕의 도덕이 이처럼 순결하고 거짓이 없지 않느냐!” 이것은 주문왕이 사후에 “문”으로 추종된 까닭으로 그의 덕행이 순순하여 한시도 쉼이 없다.

중용中庸 제25장

참된 성으로 자기완성의 기초를 삼으며, 중용의 도로써 자기의 준칙을 인도하는데 사용한다. 참된 성은 일체만물의 처음과 끝을 관통한다. 참된 성이 없으면 만사만물도 역시 없다. 그래서 군자는 참된 성에 도달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 참된 성은 자아완성에 도달하기까지 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사만물을 완성시켜 사용한다. 자아완성에 도달하는것이 인덕의 실현이다. 만사만물이 이루어지는것이 지혜의 체현이다. 참된 성은 인성중의 고유한 인품과 덕성으로 바깥의 사물과 안에 존재하는 덕성이 융합되는 하나의 기본원칙이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더하여서 모두 적합하게 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