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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태그가 지정된 글

유곡나루

육만엥이란다
후쿠오카에서 비행기 타고 전세버스 타고
부산거쳐 순천거쳐 섬진강 물 맑은 유곡나루
아이스박스 들고 허리 차는 고무장화 신고
은어잡이 나온 일본관광객들
삼박사일 풀코스에 육만엥이란다
초가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아침햇살
신선하게 터지는 박꽃 넝쿨 바라보며
니빠나 모노 데스네 니빠나 모노 데스네
가스불에 은어 소금구이 살살 혀 굴리면서
신간선 왕복 기차 값이면 조선관광 다 끝난다
육만엥이란다. 낚시대 접고 고무장화 벗고
순천 특급호텔 사우나에서 몸 풀고 나면
긴 밤 내내 미끈한 풋가시내들 서비스 볼만한데
나이 예순 일본 관광객들 칙사 대접 받고
아이스박스 가득 등살 푸른 섬진강

맑은 몸 값이 육만엥이란다

              – 곽재구 시

沙平驛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곽재구 시

사실 이시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입니다. 글을 옮기면서 빠져 있었네요. 1980년대초반에 이시를 가지고 KBS에서 TV문학관을 방영한적도 있었습니다. 잔잔하면서 한폭의 풍경화 같은 시입니다.  오늘은 어떡하다보니 시만 잔뜩 올리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