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시경’ 태그가 지정된 글

사람은 왜 학습을 할까?

우리의 뇌는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하나의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왜 학습이 필요한가하는 문제와 상관이 있는데 인간의 학습은 본능을 극복하고 머리속의 번뇌를 해소하기 위함입니다.

공자님은 배움에 대해 몇가지를 규정했습니다. 먼저 《시경》을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를 배우는 것은 흥興을 배우는 것입니다. 흥은 인간의 상상력을 배양합니다.
《시》를 배우는 것은 관觀을 배우는 것입니다. 관은 천지만물에 대한 통찰입니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교체변화의 본령이자 이것을 깨달아 인간이 소우주로 천지의 대우주와 어떻게 서로 합하고 상생는지를 배웁니다.
《시》를 배우는 것은 군群을 배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무리를 이루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깨달아 오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시》를 배우는 것은 서恕를 배우는 것입니다. 서는 고대에 풍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배웁니다.
《시》를 배우는 것은 언지言志를 배우는 것입니다. 내 의지의 지향점을 배웁니다.

다음으로는 《예禮》를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禮》를 배우는 것은 사람의 감각기관을 제약하고 조화롭게 키우는 것입니다. 어릴때 부터 음악으로 수양해야합니다.

중용中庸 제33장

《시경 위풍 석인》편에서 말했다. “안에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밖에는 보통의 겉옷을 입는다.” 이것은 아름다운 옷의 색과 무늬가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받들어 행하는 큰 도는 밖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것처럼 보여도 매일매일 분명하게 밖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소인이 연연해 하는 작은 도는 비록 밖으로는 멋있게 보여도 매일매일 조금씩 없어지고 망해간다. 군자가 받들어 행하는 대도는 자연스럽고 담담해서 사람들이 싫어함이 없으며, 형식도 간단해서 문채를 안에 감추고 있으며, 온아하고 순리에 맞아 조리가 있다. 먼것은 가까운곳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도리를 깨닫고, 다른 사람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자신의 도리로 부터 시작됨을 알고, 작고 감추인것이 밝은 결과의 도리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것들로 성인의 도덕 경계에 들어갈 수 있다.

《시경 소아 정월》편에서 말했다. “물속의 고기들이 비록 깊은곳에 몸을 감춰도 명확하게 드러나 보인다.” 그러므로 군자는 항상 스스로 반성하여 부끄러움이 없으며 마음에 불만족이 없다. 군자는 일반인이 따라잡을 수 없는 곳에 있어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곳에 있을때에 자기에게서 더 엄격함을 추구한다. 《시경 대아 억》편에서 말했다. “홀로 방에 거하는 때에 마음을 밝게하여 집안의 어두운 곳의 신명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군자는 행동하지 않을 때라도 일을 함에 공경하는 마음을 한시라도 잊어버림이 없다. 말을 하지 않을때라도 사람에게 성과 믿음을 다하는 마음으로 섬긴다.

《시경 상송 열조》편에서 말했다. “묵묵하게 말없이 고하고, 신명을 감동시키고, 당시의 사람들은 엄숙하고 조용하여 다툼이 없었다.” 이러므로 군자는 상을 주지않아도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장려한다. 화내지 않아도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형틀도구만 보아도 경외한다. 《시경 주송 열문》편에서 말했다. “그 아름다운 덕성을 높이니 제후백관이 자연스럽게 모두 본받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공경함을 두텁게 하면 천하국가는 자연스럽게 태평할 것이다.

《시경 대아 황의》편에서 말했다. “나는 너의 빛나는 덕행을 마음속에 품으며 그래서 네가 큰 구령소리와 엄격한 기세없이 백성을 다스린다.” 공자가 이를 평하여 논했다. “구호와 기세를 사용해서 백성을 교화하는 것은 아주 지엽말단적인 일에 불과할뿐이다.” 《시경 대아 증민》편에서 말했다. “덕행으로 백성을 감화시키는것이 가볍기가 마치 털오라기와 같다.” 사실 털오라기는 가볍지만 그 모양으로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시경 대아 문왕》편에서 말했다. “위로 하늘이 만물을 낳고 생장 변화시켜 키우지만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냄새도 없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최고의 경계에 도달한 것이로다!

이걸로 중용1장부터 33장까지 번역을 마칩니다.

중용中庸 제29장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려면 반드시 3가지 중요한 일(예악정의, 법도창제, 문자고정)을 해야 다스림에 과실이 적을것이다! 앞선대의 성왕이 제정한 예의제도가 아름다울지라도 그 연대가 오래되면 이미 검증할 수가 없게된다. 검증할 수가 없으면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백성은 복종하지 않는다. 천자의 자리에 있지않은 성인이 주장하는 예악제도가 아무리 아름답고 좋을지라도 존귀한 지위가 없다. 존귀한 지위가 없으면 사람들이 신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신임하지 않으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다. 그래서 군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의 가장 근본은 먼저 자기자신으로 부터 시작하여 백성들이 검증해서 확인하는 것이다. 하,상,주 삼대의 예악제도를 조사하여 어떤 차이나 잘못이 없다면 이를 다시 사용해 하늘과 땅사이에 실시해도 객관규율에 위배됨이 없을것이다. 점을 쳐 물어본것을 귀신과 비교해도 어떠한 의문이 없고 백세대 이후에 성인이 나타나길 기다려도 미혹됨이 없을것이다.

귀신에게 물어 어떠한 의문도 없다면 하늘의 도리를 깨달은 것이다. 백세대이후에 성인이 나타나길 기다려도 미혹됨이 없다면 사람의 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움직임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천하의 법칙이 되고, 그의 행위는 대대로 세상사람의 규범이 되고, 그가 말하는 것은 세세토록 세상사람의 준칙이 된다. 그로부터 멀리있는 사람은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며, 가까운 사람은 한오라기의 싫어함도 없다.

《시경 주송 진로》편에서 말했다. “(기,송 두나라는 하, 상 두왕조의 후대이다) 본 나라의 사람들은 증오가 없으며 주왕조대의 사람도 싫어함이 없도다. 정사를 돌봄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근면하여 영원토록 아름다운 명예를 지킨다.” 군자는 일찍부터 이런 일을 하여 아름다운 이름이 천하에 이르지 않는곳이 없다.

중용中庸 제16장

공자가 말했다. “귀신이 나타내는 공덕이 많고 크도다! 보려고 하여도 형상을 볼 수 없고, 음성을 들을려고 하여도 들을 수 없고, 모든 만물에 체현되어 있어 모든곳에 다 존재한다. 천하의 사람으로 하여금 목욕재계하여 그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여 아름답고 장중한 제사복을 입고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게 한다. 끝없이 넒고 아득하고 성대한 기상이 마치 사람의 윗쪽에서 바람이 흩날리는것과 같고, 또 사람의 몸주변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다. 《시경 대아 억》편에서 말했다. ‘귀신이 강림하는것을 예측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공경하지 않겠느냐?’ 귀신의 형상은 은미하고 허무하다. 그 공덕이 다시 비추어서 드러나고, 그 진정한 덕은 숨길 수가 없다. 이것이 귀신의 도리다!”

중용中庸 제12장

군자는 중용의 도를 지키는데 그 쓰임이 넓고 크고,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그 본체는 정밀하고 은밀해서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얇게 드러난 것으로 말하면 우매한 보통의 사람이라도 어느정도 중용의 도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중용의 도가 깊고 심오해서 그 정밀하고 묘한 도리에 있어서는 큰 지혜를 가진 성인이라도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얇고 가까운것으로 말하면 보통의 사람이라도 행함에 꺼리낌이 없어 중용의 도에 부합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중용의 깊고 심오하고 정밀하고 묘한 경계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이르지 못하는 곳이 있다.

천지는 넓고 공명정대해서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 이르면 감정이 생겨난다. 그래서 군자는 중용의 도를 아주넓게 보아 세상에서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중용의 도를 아주 미세하게 보아 세상에서 그것을 분해해서 해석할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시경 대아 한록》편에서 말했다. “솔개는 푸른하늘 위로 나르고, 물고기는 깊은 연못에서 뛰논다” 이 두개의 싯구는 중용의 도를 위로는 하늘에, 아래로는 땅에 비유한 것으로 위 아래 모두를 꿰뚫어 통찰할 수 있다. 군자는 중용의 도리를 지켜서 보통의 사람들이 모두 알게하고 얇고 가까운 도리에서 부터 시작하여 행하게 한다. 중용의 도의 깊고 심오한 그 정밀한 경계에 다달아서는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 통찰하고 꿰뚫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