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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태그가 지정된 글

대학大學 전문 제10장 ‘치국,평천하’를 해석하다 1

경문에서 천하를 태평하게 하려면 먼저 자기의 국가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늙은이를 존경하면 민간에서는 효도하는 풍습이 일어나며,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연장자를 존중하면 민간에서는 연장자를 공경하는 풍습이 일어나며,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고아들을 보살피면 백성들은 이러한 뜻을 따라 공덕을 배반하지 않을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간의 협조와 평형을 이루는 것을 재는 자의 도라고 하는 것이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싫어하는 행위를 가지고 아래사람에게 똑같이 대해서는 안된다. 아래사람이 자기가 싫어하는 행위를 가지고  윗사람에게 똑같이 대해서는 안된다. 선배는  자기가 싫어하는 행위를 가지고 후배에게 똑같이 대해서는 안된다. 후배는 자기가 싫어하는 행위를 가지고 선배에게 똑같이 대해서는 안된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싫어하는 행위를 가지고 왼쪽의 사람에게 똑같이 대해서는 안된다. 왼쪽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싫어하는 행위를 가지고 오른쪽의 사람에게 똑같이 대해서는 안된다. 이것을 일러 사람간의 협조와 평형을 이루는 것을 재는 자의 도라고 하는 것이다.

《시경 소아 남산유대》편에서 말했다. “화합하고 선하고 즐거운 군자는 백성의 부모로다” 이것은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그가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그가 싫어하는 것이다. 이러한 군자를 백성의 부모라고 한다.

《시경 소아 절남산》편에서 말했다. “저 험준한 남산이여! 산에 바위가 우뚝 솟았구나. 이름이 더높은 태사 윤씨여! 백성들이 모두 너를 높이 바라본다” 이것은 국가를 통치하고자하는 사람은 근신하지 않을 수 없고, 만약 도덕규범에서 떠나거나 치우친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그를 뒤집어 엎어 버릴것이다.

《시경 대아 문왕》편에서 말했다. “은조가 민심을 잃지 않은 시기에 상제에 대해 배향하는 자격이 충분했다. (뒤에 민심을 잃자 주무왕이 뒤집었다) 후세의 군왕은 마땅히 이것을 교훈으로 삼아 천명을 쉽지않게 진중하게 해야한다”  통치자는 백성을 얻었을때만 능히 국가의 정권을 보호하고 지킬 수 있다. 만약 백성의 지지를 잃는다면 국가의 정권도 잃을것이다. 그러므로 국군은 먼저 진중하게 자기의 인품과 덕을 수양해야 한다.

덕행이 잘 구비되면 백성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백성의 지지를 받아야만 광활한 국토를 차지할 수 있고, 광활한 국토를 차지해야 충분한 재와 부를 가질수 있으며, 재와 부가 충족해야 국가의 용도에 맞게 공급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덕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다. 재와 부는 나라를 다스리는 말단이다. 표면적으로 도덕을 중시하는 척하고 내심으로는 재물을 중하게 여기면 백성이 서로 다투고 이익을 두고 싸우게 된다. 그러므로 만약 재물을 나라창고에 쌓아 두더라도 민심은 흩어지고 떠난다. 만약 재물을 백성에게 나눠주면 민심이 모아진다. 만약 군주가 민심을 위배해서 명령을 시행하고자 하면 민심 역시 군주의 마음과는 멀어진다. 만약 군주가 민심을 위배하면서 재와 부를 모은다면 백성은 군주의 마음을 위배하는 방식으로 재와 부를 잃게 만들것이다.

《상서 강고》편에서 말했다. “천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선을 행하고 덕을 쌓으면 천명에 도달할 수 있고, 선을 행하지 않고 덕을 쌓지 않으면 천명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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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大學 전문 제9장 ‘제가,치국’을 해석하다

경문에서 자기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가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 가족을 잘 교육시키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잘 교육시킬수는 없다. 그래서 군자는 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전국의 백성을 성공적으로 교화시킬 수 있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극진하게 효도함을 구하고 가르침으로 정치에 있어 군주를 잘 보필한다. 가정에서 형과 연장자에게 동생으로서의 도리를 구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정치에 있어 연장자를 봉양한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자애함을 구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정치에 있어서 백성을 지도한다.

《시경 강고》편에서 말했다. “백성을 보호하는 것을 갓 태어난 아이를 보호하듯이 하라”  마음속으로 참된 성을 다해 구하고 보호하는 것은 요구에 완전히 부합하지 않고 차이가 많이나 멀지 않은 것이다. 생활중에 아이를 양육하는 것을 본뒤에 시집가는 여인은 없다. (출가 이후에 아이를 잘 키우고 가르치는 것은 완전히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참된 성에 의지하는 것이다.)

자기 집안에서 서로 친하고 인애하는 도로서 행한다면 나라도 서로 친하고 인애하는 풍속이 흥한다. 반대로 사람이 탐욕하고 폭력적이라면 나라의 백성 모두가 봉기해서 윗사람을 범하고 어지러움을 만든다. 사물의 관건이 이렇다.  이것은 (군주의) 한마디 말이 잘못되고, 일을 패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사람이 선을 지향한다면 국가의 모든것이  안정된다.

당요와 우순이 인애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를 통솔하자 천하의 백성 모두가 그들의 법을 따랐다. 하걸과 상주가 포악한 정치로 천하를 통솔하자 천하의 백성 모두가 그들의 법을 따랐다.국군이 하달하는 명령이 자기가 바라는 명령과 반대되면 백성은 이러한 명령을 듣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먼저 스스로 미덕을 갖춘후에 다른 사람에게 미덕을 수양할 것을 요구한다. 자기의 악습을 깨끗하게 한뒤에 다른 사람이 악습을 가까이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 만약 자신이 용서하는 마음을 감추고 어찌 다른 사람이 용서하는 도를 실행하기를 바랄것인가. 이런일은 일찌기 일어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가족을 바로잡아야 한다

《시경 주남 요요》편에서 말했다. “복숭아 나무가 잘자라 아름답구나, 잎이 무성하구나. 이 여인이 시집감이여, 반드시 모든집안이 화목하리로다” 자기 가족 모두가 화목한뒤에 전국의 백성을 교화할 수 있다.

《시경 소아 요소 》편에서 말했다. “형에게 공경을 다하고, 어린 동생을 사랑하라” 가족내부의 형제간의 화목과 단결이후에 전국의 백성을 교화할 수 있다.

《시경 조풍 시구 》편에서 말했다. “그의 행동거지에 어떠한 잘못도 없는 이후에야 사방 각국 나라의 모범이 되어 다스릴 수 있다.” 그가 아버지, 자녀, 형, 동생의 위치에 처해서 도덕규범에 부합하고 상응해야 모든 가족이 법을 본받아 이룰수 있고 이후에야 백성들을 교화시킬 수 있다.

이상의 모든 설명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가족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도리를 밝힌 것이다.

사람은 왜 학습을 할까?

우리의 뇌는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하나의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왜 학습이 필요한가하는 문제와 상관이 있는데 인간의 학습은 본능을 극복하고 머리속의 번뇌를 해소하기 위함입니다.

공자님은 배움에 대해 몇가지를 규정했습니다. 먼저 《시경》을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를 배우는 것은 흥興을 배우는 것입니다. 흥은 인간의 상상력을 배양합니다.
《시》를 배우는 것은 관觀을 배우는 것입니다. 관은 천지만물에 대한 통찰입니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교체변화의 본령이자 이것을 깨달아 인간이 소우주로 천지의 대우주와 어떻게 서로 합하고 상생는지를 배웁니다.
《시》를 배우는 것은 군群을 배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무리를 이루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깨달아 오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시》를 배우는 것은 서恕를 배우는 것입니다. 서는 고대에 풍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배웁니다.
《시》를 배우는 것은 언지言志를 배우는 것입니다. 내 의지의 지향점을 배웁니다.

다음으로는 《예禮》를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禮》를 배우는 것은 사람의 감각기관을 제약하고 조화롭게 키우는 것입니다. 어릴때 부터 음악으로 수양해야합니다.

중용中庸 제33장

《시경 위풍 석인》편에서 말했다. “안에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밖에는 보통의 겉옷을 입는다.” 이것은 아름다운 옷의 색과 무늬가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받들어 행하는 큰 도는 밖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것처럼 보여도 매일매일 분명하게 밖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소인이 연연해 하는 작은 도는 비록 밖으로는 멋있게 보여도 매일매일 조금씩 없어지고 망해간다. 군자가 받들어 행하는 대도는 자연스럽고 담담해서 사람들이 싫어함이 없으며, 형식도 간단해서 문채를 안에 감추고 있으며, 온아하고 순리에 맞아 조리가 있다. 먼것은 가까운곳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도리를 깨닫고, 다른 사람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자신의 도리로 부터 시작됨을 알고, 작고 감추인것이 밝은 결과의 도리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것들로 성인의 도덕 경계에 들어갈 수 있다.

《시경 소아 정월》편에서 말했다. “물속의 고기들이 비록 깊은곳에 몸을 감춰도 명확하게 드러나 보인다.” 그러므로 군자는 항상 스스로 반성하여 부끄러움이 없으며 마음에 불만족이 없다. 군자는 일반인이 따라잡을 수 없는 곳에 있어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곳에 있을때에 자기에게서 더 엄격함을 추구한다. 《시경 대아 억》편에서 말했다. “홀로 방에 거하는 때에 마음을 밝게하여 집안의 어두운 곳의 신명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군자는 행동하지 않을 때라도 일을 함에 공경하는 마음을 한시라도 잊어버림이 없다. 말을 하지 않을때라도 사람에게 성과 믿음을 다하는 마음으로 섬긴다.

《시경 상송 열조》편에서 말했다. “묵묵하게 말없이 고하고, 신명을 감동시키고, 당시의 사람들은 엄숙하고 조용하여 다툼이 없었다.” 이러므로 군자는 상을 주지않아도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장려한다. 화내지 않아도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형틀도구만 보아도 경외한다. 《시경 주송 열문》편에서 말했다. “그 아름다운 덕성을 높이니 제후백관이 자연스럽게 모두 본받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공경함을 두텁게 하면 천하국가는 자연스럽게 태평할 것이다.

《시경 대아 황의》편에서 말했다. “나는 너의 빛나는 덕행을 마음속에 품으며 그래서 네가 큰 구령소리와 엄격한 기세없이 백성을 다스린다.” 공자가 이를 평하여 논했다. “구호와 기세를 사용해서 백성을 교화하는 것은 아주 지엽말단적인 일에 불과할뿐이다.” 《시경 대아 증민》편에서 말했다. “덕행으로 백성을 감화시키는것이 가볍기가 마치 털오라기와 같다.” 사실 털오라기는 가볍지만 그 모양으로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시경 대아 문왕》편에서 말했다. “위로 하늘이 만물을 낳고 생장 변화시켜 키우지만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냄새도 없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최고의 경계에 도달한 것이로다!

이걸로 중용1장부터 33장까지 번역을 마칩니다.

중용中庸 제29장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려면 반드시 3가지 중요한 일(예악정의, 법도창제, 문자고정)을 해야 다스림에 과실이 적을것이다! 앞선대의 성왕이 제정한 예의제도가 아름다울지라도 그 연대가 오래되면 이미 검증할 수가 없게된다. 검증할 수가 없으면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백성은 복종하지 않는다. 천자의 자리에 있지않은 성인이 주장하는 예악제도가 아무리 아름답고 좋을지라도 존귀한 지위가 없다. 존귀한 지위가 없으면 사람들이 신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신임하지 않으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다. 그래서 군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의 가장 근본은 먼저 자기자신으로 부터 시작하여 백성들이 검증해서 확인하는 것이다. 하,상,주 삼대의 예악제도를 조사하여 어떤 차이나 잘못이 없다면 이를 다시 사용해 하늘과 땅사이에 실시해도 객관규율에 위배됨이 없을것이다. 점을 쳐 물어본것을 귀신과 비교해도 어떠한 의문이 없고 백세대 이후에 성인이 나타나길 기다려도 미혹됨이 없을것이다.

귀신에게 물어 어떠한 의문도 없다면 하늘의 도리를 깨달은 것이다. 백세대이후에 성인이 나타나길 기다려도 미혹됨이 없다면 사람의 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움직임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천하의 법칙이 되고, 그의 행위는 대대로 세상사람의 규범이 되고, 그가 말하는 것은 세세토록 세상사람의 준칙이 된다. 그로부터 멀리있는 사람은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며, 가까운 사람은 한오라기의 싫어함도 없다.

《시경 주송 진로》편에서 말했다. “(기,송 두나라는 하, 상 두왕조의 후대이다) 본 나라의 사람들은 증오가 없으며 주왕조대의 사람도 싫어함이 없도다. 정사를 돌봄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근면하여 영원토록 아름다운 명예를 지킨다.” 군자는 일찍부터 이런 일을 하여 아름다운 이름이 천하에 이르지 않는곳이 없다.

중용中庸 제16장

공자가 말했다. “귀신이 나타내는 공덕이 많고 크도다! 보려고 하여도 형상을 볼 수 없고, 음성을 들을려고 하여도 들을 수 없고, 모든 만물에 체현되어 있어 모든곳에 다 존재한다. 천하의 사람으로 하여금 목욕재계하여 그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여 아름답고 장중한 제사복을 입고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게 한다. 끝없이 넒고 아득하고 성대한 기상이 마치 사람의 윗쪽에서 바람이 흩날리는것과 같고, 또 사람의 몸주변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다. 《시경 대아 억》편에서 말했다. ‘귀신이 강림하는것을 예측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공경하지 않겠느냐?’ 귀신의 형상은 은미하고 허무하다. 그 공덕이 다시 비추어서 드러나고, 그 진정한 덕은 숨길 수가 없다. 이것이 귀신의 도리다!”

중용中庸 제12장

군자는 중용의 도를 지키는데 그 쓰임이 넓고 크고,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그 본체는 정밀하고 은밀해서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얇게 드러난 것으로 말하면 우매한 보통의 사람이라도 어느정도 중용의 도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중용의 도가 깊고 심오해서 그 정밀하고 묘한 도리에 있어서는 큰 지혜를 가진 성인이라도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얇고 가까운것으로 말하면 보통의 사람이라도 행함에 꺼리낌이 없어 중용의 도에 부합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중용의 깊고 심오하고 정밀하고 묘한 경계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이르지 못하는 곳이 있다.

천지는 넓고 공명정대해서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 이르면 감정이 생겨난다. 그래서 군자는 중용의 도를 아주넓게 보아 세상에서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중용의 도를 아주 미세하게 보아 세상에서 그것을 분해해서 해석할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시경 대아 한록》편에서 말했다. “솔개는 푸른하늘 위로 나르고, 물고기는 깊은 연못에서 뛰논다” 이 두개의 싯구는 중용의 도를 위로는 하늘에, 아래로는 땅에 비유한 것으로 위 아래 모두를 꿰뚫어 통찰할 수 있다. 군자는 중용의 도리를 지켜서 보통의 사람들이 모두 알게하고 얇고 가까운 도리에서 부터 시작하여 행하게 한다. 중용의 도의 깊고 심오한 그 정밀한 경계에 다달아서는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 통찰하고 꿰뚫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