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자(甲子) 일주다. 그것도 물의 기운이 가장 왕성하다는 해월(亥月, 음력 10월)에 태어난 갑목(甲木)이다.
명리학에서는 이를 두고 편인격(偏印格)이라 부른다.
차가운 초겨울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나무. 뿌리를 내릴 땅은 깊은 물속에 잠겨 있고, 하늘에는 차가운 비가 내린다. 이것이 내 팔자가 타고난 형상이다. 물은 지혜이자 어둠이며, 침묵이자 고독이다. 그래서 나의 생(生)은 필연적으로 ‘생각의 감옥’에서 시작되었다.
1. 편인(偏印),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
세상에는 두 가지 배움이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정규 교과과정인 정인(正印)의 배움이 있고, 세상의 이면과 행간을 읽어내는 편인(偏印)의 배움이 있다.
나의 별은 후자다. 편인은 남들이 “예”라고 할 때 침묵하며 의심한다. 표면적인 현상 뒤에 숨겨진 본질, 즉 ‘진짜 목적’을 파고든다. 그래서 편인격을 타고난 자들은 운명적으로 철학, 종교, 의학, 그리고 전략의 길을 걷게 된다.
내가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의학적 원리에 심취하고, 《자평정해(子平精解)》의 난해한 문장을 해독하며, 《신과 나눈 이야기》를 매년 다시 읽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내 영혼이 ‘보이지 않는 질서’를 갈구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1. 번역은 나의 생존 투쟁이다
하지만 편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생각이 너무 깊어지면 손발이 묶인다는 것이다. 명리학에서는 이를 ‘도식(倒食)’이라 한다. 밥그릇을 엎는다는 뜻이다. 입력되는 정보(Water)는 태평양처럼 방대한데, 그것을 밖으로 배출하는 행동(Fire)이 없으면, 그 지식은 썩은 물이 되어 나를 병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번역(飜譯)을 한다.
나에게 고전 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치환이 아니다. 그것은 내 머릿속에 고여 있는 차가운 지식의 바다에 물길을 트는 작업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원문의 뼈대를 훼손하지 않고 ‘스캐너 모드’로 옮겨 적을 때마다, 내 안의 엉킨 생각들은 질서를 찾는다.
블로그에 글을 발행하고, 유료 멤버십을 기획하고, 독자들에게 전략적 화두를 던지는 행위. 이것은 내 사주에 부족한 ‘불(火)’의 기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개운(開運)의 의식이다.
글을 쓰는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점화(點火)된다.
1. 병오년(丙午年), 젖은 나무가 태양을 만날 때
지금 나는 깊은 고요 속에서 새벽을 기다리며 이 글을 쓴다. 혹자는 이것을 정체기라 부르겠지만, 나는 이것을 ‘응축의 시간’이라 부른다.
물에 젖은 나무(甲木)는 불을 만나야 귀하게 쓰인다. 그리고 2026년, 병오년(丙午年)의 거대한 태양이 떠올랐다.
이제 나의 편인(지식)은 더 이상 차가운 얼음창고에 갇혀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번역하는 이 고전들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전략서가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나는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단단한 대지(大地)를 밟게 될 것이다.
평생을 물 위에 떠다녔던 ‘부목(浮木)’인 내가, 마침내 단단한 흙을 만나 뿌리를 내리고, 세상에 그늘을 드리우는 거목으로 서는 것.
이것이 내가 고전을 번역하는 진짜 이유다.
나는 오늘도 번역한다.
차가운 지식을 뜨거운 지혜로 바꾸기 위하여.
나의 겨울을 끝내고, 화려한 여름으로 나아가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