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당신은 누구인가

먼저 제 소개부터 하지요. 제 이름은 노정용(盧正龍)입니다. 원래 항렬은 다스릴 치(治)였습니다만 늦게 태어난 죄로 치(治)자로 시작되는 좋은 이름은 이미 저보다 앞서 태어나신 분들이 다 차지하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항렬에서 벗어난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학다닐때까지 제 이름이 좋은 이름인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수님이 제 이름 풀이를 해주시는데 주역에 “정중용덕(正中龍德)”이라는 문구가 있다고 하시면서 그 뜻은 “올바른 가운데 큰 덕이 있다”는 뜻이라며 좋은 이름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제 이름을 지은 아버님께서야 이런 주역까지 참고하지는 않았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여하튼 저는 벚꽃으로 유명한 경남 진해에서 4남매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제가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교육신문사 기자로 있으면서 이것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하고, 여론을 환기시켜서 결국 명칭변경이 된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린이학교 정도로 고쳤으면 좋았을 것을 초등학교로 수정하는것을 보면서 많이 섭섭했습니다)를 거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진해에서 살았습니다. 그것도 이사한번 하지 않고 똑같은 집에서 말입니다. 어릴때는 남들이 이사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커서 보니 이사 하는게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한곳에서 살게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가 진해 출신이라고 하면 열이면 아홉은 벚꽃에 대해 물어보더군요. 근데 저는 매년 4월만 되면 벚꽃보다는 사람구경이 더 재미 있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laotzu를 어떻게 아이디로 사용하는가 
처음 아이디를 정할때가 1988년 케텔(지금의 하이텔)에 가입할때 였습니다. 그땐 몇일을 두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laotzu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통신이나 인터넷에서나 제 아이디는 어딜가나 laotzu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암호같은 laotzu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당히 궁금해 합니다. 읽는 방식도 여러가지지요. 라오트주, 라오쯔 등등…. 고대 중국의 자연철학자인 노자(老子)가 있습니다. 제가 이 분을 좋아해서 그분의 중국본토 발음인 라오쯔를 아이디로 하기로 한 것이지요. 라오쯔를 영어로 바꾸면 laotzu가 됩니다.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나요. 

 당신이 다닌 학교는 
진해남부교회유치원, 진해남산국민학교, 진해남중학교, 진해고등학교,성균관대학교, 성대대학원 수료….. 그러다 또 북경중의약대학까지 반평생을 공부하면서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풀코스로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학교교육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배울권리만큼 배우지 않을 권리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교육이 교양인을 키우는데 진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학, 영어 이런것은 좀 덜 배우더라도 윗사람에게 인사할 줄 알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학교교육을 통해서 세가지만은 확실히 배웠으면 합니다. 첫째, 질서를 잘 지키는 법. 우리나라에서 교통질서를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아마 유치원에 다니는 얘들일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얘들이 커가면서 점점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질서는 불편한것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것으로 인식하는것 같아 정말 답답합니다. 둘째,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태도. 요즘들어 식당이나 공공장소에 가면 그야말로 버릇없는 아이들 때문에 눈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화근이 되는법이지요. 부모의 사랑도 지나치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것입니다. 세번째는 고발정신입니다. 우리는 잘못된것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데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발견하는 순간 내가 좀 손해보고 말지 하는 생각으로 참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그 손해가 자신의 손해만으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파급되는 문제는 참으로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릴때부터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이걸 바로잡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것을 가르치지 않는 이상 부패한 사회가 정화되기를 바라는것은 우물에서 숭늉 구하는격이지요.  이런 측면에서 교육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제도든 한번 만들때는 큰 동기없이 생기기도 합니다만 없애기는 쉽지 않지요. 교육제도도 마찬가지지요. 학교교육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교사를 위해, 행정가를 위해서… 저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활은 어땠는가 
대학때는 학보사인 ‘성대신문사’의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습니다. 신문사에서 주는 장학금(학업성적과는 전혀 관계없음)과 월급으로 졸업할때 보니 학교에 낸 등록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학교로부터 받아 흑자를 달성했더군요.  편집장을 하면서 기억나는 일은 1987년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미국을 18일동안 방문한 일입니다. 미국에 갔을때 국무성(한국과)에 담당자에게 왜 한국내정에 간섭하느냐는 항의를 했을때 “우리가 하나를 원하면 한국정부에서 알아서 다섯 여섯을 해준다”는 말에 정말 약소국의 비애를 느꼈습니다. 어찌되었건 국가건 가정이건 개인이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했습니다. 이와함께 오래돼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의사당을 방문해서 어떤 의원 집무실에 갔더니 DJ와 YS로부터 받은 화병과 자개함을 자랑하더군요. 이때 이 두사람의 앞길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감이 들더군요.  

대학 졸업후 사회생활은 
학교를 졸업한뒤 1991년 6월에 한국교육신문사에 기자로 입사했습니다. 이곳에서 좋은 친구들과 선배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취재 편집등 제 적성에 맞는 일이었습니다. 취재영역은 각급 학교, 국회, 서울시교육청을 담당했습니다. 뜻한바 있어 1994년7월에 생애 첫 사표를 던졌습니다.  교육신문을 그만둔 뒤 바로 1994년 8월 PC통신 서비스회사인 나우콤에 입사했습니다. 입사할때는 IP를 담당하기로 했으나 동호회를 셋업시키라는 명을 받고 처음 6개월 동안은 동호회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동호회 업무를 담당하면서 나우누리에 처음 생긴 많은 동호회들을 개설하고 또 좋은 동호회를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오래 남습니다. 동호회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자 IP개발팀으로 옮겨서 회사를 그만둘때까지 IP업무를 담당했습니다. IP개설은 200개 정도 시켰고, 제안서는 한 천건쯤 검토했습니다. 결국 이런 IP개발팀의 근무경험으로 나중에 책을 쓸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나우누리에서 근무했던 나날들이 저에게는 참 소중했습니다. 1996년 말 두번째 사표를 냈습니다. 사표도 한번 내기가 힘들지 두번째는 훨씬 쉽더군요.  나우콤을 그만두고 CYAD를 만들어 2000년 4월까지 운영했습니다. 1999년 5월부터 한 달 동안은 무쇠다리(뒤에 알짜마트) 창업과정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 알짜마트가 처음의 목적대로 잘 진행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얼마전에 운영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픕니다. 얼마전까지 ibizkorea.com을 운영했습니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중국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북경중의약대학에서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서 중의학을 공부했습니다. 최근에는 그동안 해왔던 모든일을 접고 이 블로그 운영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당신은 무슨 꿈을 가지고 사는가 
모든 사람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것. 치료보다는 예방에 관심이 많습니다.


연락처
연락은 contact를 이용해 보내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