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원죄 개념을 통해 인간에게 죄책감을 주입하여 자기 비하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교회 권력을 유지해왔다. 비난받는 교리에 반해, 도마복음은 인간이 신성한 존재임을 일깨우며 불필요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라는 메시지가 핵심이다.
[광야의 소리 020] 신은 당신에게 무보수 노동을 요구하지 않았다: 비전과 열정페이
교회는 봉사 활동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비전'이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교인들의 죄책감과 인정욕구를 이용해 무보수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진정한 소명은 조직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존중하고 쉼을 찾는 데 있음을 강조한다.
[광야의 소리 019] 활자(活字)에 갇힌 신: ‘성경 무오설’이라는 지적 게으름
'성경 무오설'은 기독교 내에서 우상숭배로 비판되며, 이는 신을 고대의 편견에 가두어 현대의 과학과 인권을 부정하게 만든다. 문자주의는 교인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할 기회를 박탈하고, 진리는 예전의 문서 속이 아닌 현재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焚書 卷三 (분서 권삼) – 童心說 (동심설) [完]
이 글은 진나라와 한나라의 문학, 및 성당 시대의 시가 반드시 따를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 동심이 있는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표현이 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법도를 따를 수 없다고 설명한다. 또한 진정한 문장은 법도를 필요로 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焚書 卷三 (분서 권삼) – 童心說 (동심설) [5]
육경, 논어, 맹자는 과거 사관의 잘못이나 신하와 제자들의 지나친 숭상이 원인이 되어 그 의미가 왜곡되었음을 설명한다. 성인의 말은 특정 상황에 맞춘 처방으로, 영원한 법으로 삼기 어려움이 지적되며, 이로 인해 성인의 말이 진정한 법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매일고전] 방향이 옳다면 어떤 비바람도 두렵지 않다
2026년 3월 27일의 포스트는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확고한 목적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진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두어야 하며, 올바른 뜻을 가진 리더는 윤리적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실천을 통해 순수한 목적을 재확인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焚書 卷三 (분서 권삼) – 童心說 (동심설) [4]
문장의 우열을 논할 필요가 없으며, 최고의 문장은 동심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동심이 있다면 문장과 사람의 아름다움, 도리의 현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강조하며, 육경과 같은 고전은 오히려 동심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매일고전] 사람을 제대로 미워할 줄 아는 것도 실력이다
조직의 리더에게 사람 평가가 가장 어려운 과제라는 주제로, 공자는 인(仁)한 사람만이 올바르게 사람을 좋아하고 미워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하고 도덕성과 조직 기여도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건강한 조직문화를 위해 공정한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焚書 卷三 (분서 권삼) – 童心說 (동심설)[3]
가짜 사람은 가짜 말을 하고, 가짜 행동을 실행하며, 가짜 글을 씀으로써 모두 서로 일치한다. 그러므로 가짜가 만든 것에 대해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어, 그 결과 가짜에 대한 진실이 가려지는 경향이 있다.
焚書 卷三 (분서 권삼) – 童心說 (동심설) [2]
동심을 잃으면 성인의 말이나 현인의 행위도 가르침이 되지 못하며, 도리와 견문이 스며들게 되면 결국 동심과 분리된다. 더 나아가, 동심을 잃고 도리를 마음으로 삼게 되면, 말은 동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그저 외적인 표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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