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사주입수수지(四柱入手須知)제6장 경세치용(經世致用)

사주에 대해 전면적인 분석과 구체적인 해구(解構 – 구조를 품)를 진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주를 이용하여 점단(占斷)하고 사람 일생의 과정을 미리 측산(測算)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주 책은 사주가 인생을 측산하는 내용을 여러 개의 전제(專題 – 전문 주제)로 나누어 논하니, 그 대치(大致)는 다음을 포함한다: 성정(性情), 생김새(長相), 학력, 혼인과 육친(婚姻六親), 재운(財運), 관운(官運), 재액(災厄 – 감옥, 질병, 횡사), 지어 수원(壽元 – 사망) 등이다. 관찰해 보면 이러한 전제들은 개인, 가정, 사회 세 개 방면을 벗어나지 않고 인생 내용을 개괄하여 진행하는 것이며, 그중에는 또한 사람의 자연 속성과 사회 속성이라는 두 개의 큰 틀(大框框)을 동시에 고량(考量)한 것이다. 비유하면 성정, 생김새, 먹고 마심(吃喝), 기질, 기호, 특기, 신체, 수원은 모두 개인의 범위 속에 놓아두고 토론할 수 있으며; 혼인, 육친에 이르러서는 모두 가정의 범위 속에 놓아두고 파악할 수 있고; 또 학력, 사업, 경제 등은 모두 사회 환경 속에 놓아두고 형량(衡量 – 가늠함)할 수 있다. 물론 개인, 가정, 사회의 세 개 서로 다른 차원(層次)의 범위는 아주 엄밀한 한계 구별을 구비하고 있지 않으며 그사이에 다분히 상호 연관되어 있다. 필자가 소이 이렇게 강(講)하는 것은 여전히 전통 유학(儒學)의 주요 사상을 품부(稟)하여 개인, 가정, 사회를 동시에 연계하여 일어나 관찰하고 파악하고자 함이니, 이것 또한 전통 유학이 정심성의(正心誠意),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이용해 일개 주선(主線 – 주된 선)으로 삼아 인생이 세상을 경영하는(經世) 가치와 의의를 관철하려는 것이다.

당연히 절대다수 상인(常人 – 보통 사람)에 이르러 강하자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근본적으로 논할 바가 못 되나 몸을 닦고 수양함(身心修養), 가정 관계, 사회 활동은 사람마다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3대 항목(三大項)이다. 사주가 곧 인생 일평생의 “조화(造化)”를 추심(追尋 – 찾아감)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사주에 대한 해석과 측산도 마땅히 그중 개인, 가정, 사회 이 세 개 층면(層面)에 이르러 전개하여 진행해야 한다. 또한 사주가 “치국평천하”를 배척(排斥)한다고 강하는 것인데, 이는 사주가 단지 일정한 범위의 “작은 천지(小天地)”일 뿐이라 그것이 전면적인 부위(全部) “큰 천지(大天地)”의 모든 정형을 동기화(同步)하여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대 적지 않은 술자들이 일부 대인물(大人物)의 사주를 열중하여 인용(熱衷用)해 국운(大天地)의 변화를 연구하고 검증하는 것은 아주 황당(荒唐)한 것이다. 이는 인위(因爲 – 왜냐하면): 첫째, 이러한 대인물들의 사주는 정확한가?

절실하게 고증(考證)하여 헤아림(考量)을 거쳤는가; 둘째, 대인물의 개인 운명이 비록 국운과 숨 쉬듯(息息) 관련되어 있으나 단지 또한 완전히 개인의 “작은 천지”(사주)를 국가라는 이 “큰 천지”의 모든 연화(演化 – 변화)와 동등(等同)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민영(萬民英) 선생은 이미 이 문제를 인식하였으므로 고로 그는 《삼명통회》 중에 강하길: “천생 대귀인(제왕)을 점요(要之 – 요약하건대)하면 반드시 명수(冥數)와 기운이 있어 주관함이니 연월일시 다분히 족히 의지할 바가 못 된다.” 하였다. 기효람(紀曉嵐)은 《사고제요(四庫提要)》 중에서 운하길: “대개 술수지학(術數之學)은 가령 성평(星平 – 점성술과 사주) 둔갑(遁甲) 부류와 같으니 추론하여 미루는 바가 한 몸 한 때(一身一時)에 그치므로, 필부의 정신 지기(志氣)는 조화(造化)와 서로 통할 수 없으니 고로 한소(韓蘇)가 두수(箕斗 – 별자리)를 읊고 남신(藍神)이 용사(龍蛇 – 별자리)를 읊었으나 역(亦)수로써 제한(數限)되어 통하지 못하였다……” 확연히 이 두 명의 명청(明淸) 대진사(大進士)는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동감하며(不約而同地) 일부 술수학(術數學)은 단지 개인의 “일신일시(一身一時)”만을 추측하고 측정할 뿐 부위(全部)의 조화를 능히 헤아려 산출(推算)할 수 없다고 여겼다. 따라서 당대 일부 술사(術士)들이 책 중에서 대강(大講)하며 모 모 대인물의 사주를 여하(如何如何)하게 운운하여 명학의 예증(例證) 연구로 삼아오는 것은 아주 황류(荒謬 – 터무니없음)한 것이다. 이는 고인이 진정으로 국운을 연구함에 일찍이 사주 부류의 소수(小數)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며 지어 상대적으로 고심(高深)한 기문둔갑(奇門遁甲), 대육임(大六壬)도 고인이 또한 비교적 언급함이 적었으니 곧 국운을 추산함에 쓰인다고 거론되는 태을신수(太乙神數)조차 사실상 증명컨대 또한 황탄하고 근거 없는(荒誕無據) 것이다. 고인이 진정으로 연구하여 국운에 가장 많이 응용한 것은 역시 성상점후(星象占候 – 별자리 점)의 학문이니 마치 이순풍(李淳風)의 《을사점(乙巳占)》이 곧 그중 가작(佳作)이다. 필자가 이 책에 대하여 일찍이 깊이 들어가는 연구를 행하였고 일부 대사에 대한 예견(預見)이 일찍이 파악과 응험(應驗)이 있었으나 단 또한 감히 진정으로 전부의 “천기(天機)”를 통찰하였다고 긍언(肯說 – 긍정하여 말함)하지 못한다. 천의(天意)는 본래 높고 가히 문문(問問 – 묻기 어려움)하며 조화(造化)는 무궁하고 호호세사(浩浩世事)하니 어찌 개인의 일사일견(一私一見)의 작은 지혜로 능히 다 엿보고 측량할 바가 되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사주가 국가 기수(氣數)와 간섭하지 않고 포괄하지 않는다고 초보(初步) 한정하였으니 그것은 주로 일부 상인(常人 – 보통 백성 및 일부 상대적인 부귀자)의 변화를 연구하여 개인, 가정, 사회 세 개 범위에서 해구(解析 – 풀이하고 해석함)를 짓는다. 전통적인 “병약(病藥)” 속설(俗說)과 소위 “신법(新法)”이 사주 전제 해석에 대함은, 천언만어(千言萬語)라 강할 수 있고 동시에 천기백괴(千奇百怪)하다.

당금 세상에 유행하는 이런 전제 논술들을 총결하면 두 대류(大類)로 나눌 수 있으니: 첫째는 “단어(斷語 – 단정 짓는 말)”론이요, 둘째는 용신 “만능”론이다. 무엇을 일러 “단어”라 하는가? 곧 개인의 운명 사주의 해석을 뭇(衆) “단어”를 가지고 번호에 맞춰 자리에 앉히는(對號入座 – 끼워 맞춤) 것이니, 이런 “단어”의 방법은 소씨(邵氏) “발명”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강할 수 있다. 진정한 고인 고서(古書) 중에서는 결코 일개 명례(命例)가 모 구절 “구체적인 단어”와 결합함을 통하여 논을 정립(下結論)하는 것이 없다. “단어”는 절대로 신임할 수 없으니 당금 범(凡) 책 중에서 명리를 이탈(脫離)하여 하나의 조목 여하자를 열거하는 것은 모두 “단어”의 변상(變相 – 형태가 변한 것)으로 모두 연원이 없는 물(無源之水)이요 뿌리 없는 나무(無根之木)이다.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명리이니, 또한 곧 명학의 기본 원리이며 진정한 미측(推測)은 어떠한 “단어”도 고려할 소수(須)가 없이 단지 일부 명학의 원리에 따라 순세(順勢)로 유도 도출(推導)하기만 하면 곧 가(可)하다. 따라서 필자의 책 중(상학, 육임 방면 포함)에는 한 번도 어떠한

어떤 것들은 죽도록 기억해야만(死記硬背) 하는 것이 아니며 모두 원리에 따라 쓰여진 것이니 오직 독자가 충분히 이해하기만 하면 곧 성심고효(省心高效 – 마음을 아끼고 효과를 높임)할 수 있다. 가령 여명의 외도(外遇)는 만약 명 중에 일주 하나에 오히려 수(數) 개의 관살 지성(之星)이 가임(可任)하면 한 몸에 이미 다수 남편(多夫)이 배당된 것이니 어찌 외도 혼연 변고(婚變)가 없겠는가! 이는 현이이견(顯而易見 – 확연히 드러나 보기 쉬움)의 일이다.

또 비박(批駁 – 비판하여 논박함)해야 할 것은 용신 “만능”론이다. 당금의 명서가 너무 많이 범람하여(實在太多太濫) 거의 모든 판단이 모두 속설(俗說) 중의 “병약(病藥)”이라는 이 용신 위로 걸려(挂) 있으니, 심지어 이 “용신”은 마치 마장(麻將 – 마작) 속의 “백탑(百搭 – 어디에나 다 쓰이는 패)”과 같아서 호응(呼應)하지 않는 바가 없다. 비유하면 학력을 강(講)하는데 소위 “인효(印梟)가 용(用)이 되어 왕상(旺相)하여 생을 만나면 학력이 높고; 인효가 기(忌)가 되어 쇠약하고 극을 받으면 학력이 높다” 하여 학력을 곧 이 “용신”과 연계시켰다. 또 강 관위(講官位)하는데 소위 “관이 용신이 되어 약하고 제(制)를 받으면 관위가 없고; 관이 용신이 되어 명국 중에 나타나지 않으면 무관위(無官位)” 등 부류이니 관운도 이 “용신” 위에 걸어두었다…… 이와 같은 수많은 종류는 매거불승(不勝枚擧 –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많음)이다. 당금의 전업 사주 연구자들과 일반 애호가들이 이 유행하는 “용신”설의 영향을 받은 것이 뼈에 사무치게 깊어 이 류(謬)설의 속박을 받아 거의 자발적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니 진정으로 응용함에 이르러서는 손발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手足無措) 마음속에 바닥(無底)이 없으며 십수 년을 배우고도 백학백탑(白學白搭 – 헛배우고 헛수고함)이 되어 오호, 애재(嗚呼 哀哉)라! “병약” 용신설은 여기까지 오면 가히 쉴 때(休矣)가 되었다.

사주명학 정통 체계가 인생 각 전제에 대하여 판단하는 방법은 사주 속설 중의 “평형” “병약”으로부터 산생(産生)한 “용신”과 실낱같은 한 터럭의 연관도 없으며 또 단어(斷語)와도 전혀 관련이 없다(毫不搭界). 그것은 사주, 십신, 용신, 격국의 각개(各個) 특징 및 명국 전체에 중점을 두어 진행하는 것이며 모두 명학 정통 원리의 순세 추도(順勢推導)이니 번잡하거나 자질구레(繁瑣)하지 않으면서 정연하여 도리(條理)가 있다.

사주명학 정통 체계의 분류 측산을 연구하려면, 우선 각 분류 측산 운용의 공공(公共) 기초 지식을 장악해야 한다. 이러한 기초는 주로 네 개 방면의 내용을 포함한다: 첫째는 사주의 운한(運限)이니 일반으로 《삼명통회》 관점에 의거하여 파악을 진행한다: 연주(年柱)는 십오세 이전을 관할하고 월주 일주는 십오세부터 사십구세의 일절(一段)을 관할하며 시주(時柱)는 오십세 이후를 전담(專管)한다. 동시(同時)에 또 반드시 연주가 일생(一生)을 통관(統管)함도 겸하여 고려해야 하니 월주가 주관하는 소년 운이 일찍 한정(早限)되고 일주가 중년(中年)을 주관하며 시주가 노년(老晩)을 주관하여 한정되는 이 일법(一法)이다(차일법은 줄여서 “삼주사한(三主四限)”이라 칭한다); 둘째는 사주의 육친 궁위(宮位)이니: 연주 조종 부모, 월주는 형제 문호(門戶)를 대표하고, 일주는 자신 배우자를 대표하며 시주는 자손(子孫)을 대표한다. 셋째는 기둥 중 왕(旺)한 자가 인생의 주요 상(象)을 표현(表現)하고 쇠(衰)한 자가 인생의 차요(次要) 사상(事象)을 표현하니 그중 연간(年干) 월지(月支)를 가장 중시한다(차일법은 줄여서 “사대육친(四大六親)”이라 칭한다); 넷째는 요컨대 사주 지간(支干) 중의 주차(主次)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하니: 연주는 요컨대 연간을 보고 월주는 요컨대 월지를 보며 일지는 요컨대 일주가 성쇠(盛衰)함을 정함(定)을 보고 시주는 내 격국 성패와 만경(晩景 – 노년)에 관호(關乎)한다; 유년(流年)은 천간(干)을 중시하고 대운은 지지(支)를 중시한다. 이 네 조목의 기본 원칙은 개인, 가정, 사회 각 방면 인생 내용의 전제 해구(解析)에 적합(適合)하니 모름지기 영활하게 장악해야 한다.

다시 담론해야 할 일 점은 관어(關于) 명리 추도(推導)의 구체적인 법칙에 관해서이다: 정리(定理). 명리 추도에서 나오는 일조(一條) 조목의 구체적인 법칙이 곧 “정리”이며 이런 “정리”는 결코 단어(斷語)가 아니니 비유하면 비겁탈재(比劫奪財), 식신생재(食神生財), 식신제살(食神制煞) 부류가 모두 “정리”이다. 단어가 소이 잘못(錯謬)된 것은 곧 그것의 적용 조건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교왕과정(矯枉過正 – 잘못을 바로잡으려다 지나치게 함)하여 단어에 대해 판정을 진행할 때 반드시 정반(正反) 양 방면의 검험(檢驗)을 따라 결론지어야 그 도저(到底)히 성립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으니, 오직 정반 양 방면의 검험을 거친 단어라야 바야흐로 “진리(眞理)”가 될 수 있다. 이로써 형량(衡量)해 보면 당금 일체 명서 중의 모든 단어는 단 하나의 조목(一條)으로도 기본상 성립할 수 없으니, 이런 관점이 비록 편격(偏激 – 치우치고 과격함)한 곳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으로 하여금 심성(深省 – 깊이 반성함)하게 한다. 필자가 찬술(撰述)하는 본 서는 절대로 일조(一條)의 어떠한 단어도 부가하지 않으며, 필자가 강조하여 추측하는 일부 기본 명리(命理)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능히 그것들을 “단어”처럼 사판(死板 – 융통성 없이 굳어짐)하게 대동(等同)하여 온 세상 사해(四海)에 모두 들어맞기를(放之四海而皆准) 요구할 수는 없다. 명리 필경 현대 서방 학술 그처럼 도리 기율과 엄밀함을 중시하는 것과는 동등(等同)하지 않으니 백분지백의 절대적 정확함을 요구한다.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단지 일반 명리가 백분지 구십 이상의 명국에 적용될 수 있기만 하면 자못 이미 득료(得了 – 훌륭함)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인위(因爲) 사주가 필경 사람과 하늘이 서로 본뜨는(人天相仿) 기초 위에서 건립되었으니, 인천상방은 대략 추측하여 “천인합일(天人合一)”을 도출할 수 있으나 도리어 완전히 절대적인 “하늘(天)”과 “사람(人)” 합일로 한 터럭의 구별도 없다고 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명학 속 일부 기본 원리를 강(講)할 때 또한 단지 “천리(天理)”로부터 미루어 앎(推衍)을 따라 상대적인 “천리”가 사람 일을 추측 측정하는 명리로 연변(演變)하는 것이 가능한 바이니, 소위 “사람의 일이 다 천리로부터 나타난다(人事盡從天理現)”함이 이것이다. 단 우리 교조화(敎條化)하고 절대화하여 모든 “천리” “명리”를 백분지백 정확함의 지보(至寶)로 증명(作證)할 수는 없으니 이는 불현실(不現實)하고 불객관(不客觀)적인 것이다. 모름지기 어떠한 이론이든 사실 사이와는 다분히 절대적인 오차가 존재함을 알아야 하니 동양(同樣)의 이치로 전통 학술 및 사주명학은 그 측정하고 헤아리고자 하는(欲預測) 인생 현실과 다분히 존재하는(存在) 것도 절대적인 오차이다. 환언지(換言之 – 바꿔 말하면), 사주 이론상 백분지백 정확률을 강구(講求)함은 모두 불엄밀(不嚴密)한 관점이다.

마지막으로 설명해야 할 것은 사주 명학을 연구함에 반드시 구실정신(求實精神 – 사실을 구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진(時辰)이 불명(不明)한 사주에 대하여 우리는 차라리 육자(六字 – 삼주)의 추산을 진행할지언정 야단스럽게 시진을 추측하여 보완(補綴)하려 해서는 안 되니 스스로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自欺欺人)을 모면(以免)해야 한다. 오직 사주 팔자가 확정하고 확실하여 무오(無誤)해야 바야흐로 진정한 추산을 진행할 수 있다. 지어 소수 명국의 오해(不好解 – 해석하기 좋지 않음)에 이르러서도 천만(千萬) 번 억지 부회(臆想附會 – 억지로 갖다 붙임)하지 말아야 하니 보존이불론(存而不論 – 보류해 두고 논하지 않음)이 가하다. 필자 연구는 내(乃) 명술 상의 학리(學理)이니 모두 상대성이 있어 아는 것은 아는 것이요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니 천만(千萬) 번 일 후(事后)에 제갈량인 척하여 “마후포(馬后炮 – 뒷북)”로 스스로 둥글게 둘러대며 설하지 말라(自圓其說). 단 총괄(總)하여 강하자면 육격 대강(六格大綱)에 비추어 나아가(照) 모든 사주 명국을 보면 모두 동약관화(洞若觀火 – 불을 보듯 훤함)하여 한둘로 청초(淸二楚)할 수 있으니 진정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번뇌하여 해부하지(不解) 못하게 하는 고괴(古怪 – 기이함) 명국은 다분히 태다(太多)하지 않다. 단지 독자가 육격 대강과 십신 경위(經緯)를 정연(精硏 – 정밀히 연구)하여 그 일격 중의 각종 변화 모식(模式)을 동찰하기만 하면 자연히 강거목장(綱擧目張 – 벼리를 들면 그물이 펴지듯 사물의 핵심을 잡음)하여 마음속에 수가 있음(心中有數)을 도달할 수 있어 성위(成爲) 운명을 논하는(論命) 일류 고수(一流高手)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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