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역사의 명학(命學),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주명학(四柱命學)은 천 년에 가까운 전승과 변천을 거쳐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명학 정통의 본래 모습은 후세 일부 술사들의 얕고 속된 억측에 의해 해체되고 견강부회되어 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른바 “신법(新法)”이니 “정종(正宗)”이니 하는 것들이 유행하며, 고인들이 운명을 논했던 근본 원리인 육격(六格)을 무시하고, 얄팍한 부억(扶抑)이나 종격(從格) 따위의 이론으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잘난 체하는 세태는 참으로 개탄스럽다. 우리가 진정으로 운명의 이치를 깨닫고자 한다면, 곁길을 헤맬 것이 아니라 명학 법맥의 정통인 고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정통 명학의 뼈대, 육격(六格)과 간지(干支)의 조화
고전 명리학의 핵심은 단연 『연해자평(淵海子平)』과 『삼명통회(三命通會)』 등에서 강조하는 육격(六格)의 대강이다. 재(財), 관(官), 인(印), 식(食)을 중심으로 파생되는 이 격국이야말로 사람 운명의 부귀빈천을 가늠하는 흔들림 없는 척도다.
사주를 볼 때 연간(年干)은 일생을 통괄하는 조화의 주재요, 월(月)은 격국으로 운명을 논하는 중심이다. 또한 일(日)은 나 자신인 명주(命主)가 되며, 시(時)는 평생의 행적이 귀결되는 곳이다. 특히 시주(時柱)는 ‘돌아가 쉬는 곳(歸息之地)’으로서, 초중년의 운세가 아무리 좋아도 시(時)에 흉신이 자리하면 말년이 처참해질 수 있고, 반대로 초년이 험난해도 시(時)에 성격(成格)되는 글자가 튼튼하면 만년에 끝내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운명의 저울질: 중화(中和)와 평형(平衡)
정통 명학이 운명을 판단하는 대원칙은 바로 ‘중화(中和)’와 ‘평형(平衡)’이다. 일주(日主)와 용신(用神)은 저울에 비유할 수 있다. 사주팔자는 선천적인 기운의 저울이고, 운(運)은 저울추다. 저울에 달린 물건(용신)과 저울추(일주)의 무게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만 부유하고 귀한 명이 된다. 어느 한쪽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 저울이 기울어지면, 즉 태과(太過)하거나 불급(不及)하면 그 삶은 험난하고 정체될 수밖에 없다. 대운(大運)과 유년(流年)의 흐름 역시 이 기울어진 저울을 부축하고 덜어내어 평형을 맞추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내 삶의 흥망 궤적은 어디에 속하는가?
그렇다면 인간의 삶은 어떤 궤적을 그리며 발달하는가? 『연해자평』의 군흥론(群興論)은 이를 다섯 가지로 명쾌하게 분류한다.
• 당흥(當興): 평생 좋은 운이 따라 시종일관 거침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삶.
• 굴기(崛起): 빈궁하고 굶주리며 엎어지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좋은 운을 만나 호랑이가 포효하듯 크게 일어나는 삶.
• 취흥(驟興): 지극히 천한 상태에 머물다 운의 흐름이 흉신을 권력으로 변화시켜 일약 높은 자리에 오르는 삶.
• 중흥(中興): 시종 분발하며 잘 나가다가 중년에 흉운을 만나 크게 꺾인 후, 다시 운의 도움을 받아 마른 모가 비를 맞듯 재기하는 삶.
• 말흥(末興): 반평생 험난하고 고생하다가, 만년에 이르러서야 부족했던 기운을 채우는 운을 만나 홀연히 늦은 성공을 거두는 삶.
우리가 사주명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미래를 맞추기 위함이 아니다. 자아를 명확히 인식하여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피하며, 자신의 궤적이 ‘굴기’인지 ‘말흥’인지 천명(天命)을 깨달아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인생길을 묵묵히 걸어가기 위함이다.
비법(秘法)을 좇는 세태를 향한 일침
오늘날 수많은 역학 연구자들이 강호 술사들의 이른바 ‘사전(師傳, 스승의 가르침)’이나 ‘비법’, ‘절초’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치에 대한 깊은 분석 없이 남이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것은 맹목적인 부딪힘일 뿐이다. 진정한 큰 도(大道)는 강호의 얄팍한 비법에 숨어있지 않다. 옛 성현들은 이미 그 핵심과 요체를 고전 속에 모두 기록해 두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헛된 비법을 찾아 헤매는 것을 멈추고, 고대의 연원(源頭)이 되는 텍스트로 돌아가 올바른 이론의 지도를 받는 것이다. 흔들림 없는 정통의 뿌리 위에서만 비로소 운명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이치를 온전히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