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교회의 무식한 기복 신앙과 목회자들의 세습에 질려버린 대중이 이탈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새롭게 정착하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바람 부는 광야가 아니라, 더 교묘하고 세련되게 포장된 ‘멸균실’이다. 거대 엔터테인먼트의 수장(박진영)이 이끄는 류의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성경 강해에 열광하며 모여드는 군상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기복주의 못지않은 지독한 허영심이 도사리고 있다.
‘맹신을 혐오한다’는 맹신
그들은 기존 교인들을 향해 “생각 없이 맹신하는 자들”이라며 우월감을 느낀다. 반면 자신들은 역사적 팩트와 과학적 근거를 통해 성경의 난제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 ‘지적 합리성’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함정이다. 그들은 신의 무한한 경륜을 철저히 인간의 이성이라는 좁은 틀 안에 가두고, 자신들이 그것을 완벽히 해석해 냈다고 믿는 새로운 형태의 맹신에 빠져버렸다. 우주의 본질은 한 줌의 지식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의 벼랑 끝에서 이성의 한계가 박살 날 때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깊은 심연이다. 이들은 그 심연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어 얄팍한 ‘팩트 체크’라는 지적 유희로 불안을 달래고 있을 뿐이다.
선민의식으로 포장된 영적 엘리트주의
이 세련된 멸균실에 모인 자들의 기저에는 “우리는 저 무지렁이들과 달리 진리를 제대로 깨달은 소수”라는 엘리트주의적 선민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그들은 값싼 기복 신앙을 혐오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남들보다 더 수준 높고 차별화된 영성’이라는 또 다른 스펙을 취하고 싶어 하는 자본주의적 욕망과 정확히 닿아 있다. 구원을 마치 고급 프라이빗 클럽의 멤버십처럼 소비하며, 자신들만의 리그 안에서 영적 우월감을 만끽하는 것이다. 진리는 결코 차별적 소비의 대상이 될 수 없음에도 말이다.
먼지 묻은 실존을 거세한 ‘스튜디오 영성’
이 엘리트주의자들의 가장 큰 비극은, 진리를 머리로만 소비할 뿐 흙먼지 날리는 삶의 현장으로 끌고 내려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성찰은 완벽하게 통제된 스튜디오의 조명 아래서만 번듯하게 작동한다. 삶의 가장 밑바닥, 치열한 밥벌이의 현장과 피눈물 나는 관계의 진흙탕 속에서 진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에어컨이 나오는 무균실에서 우아하게 나누는 진리 담론은, 거친 광야에서 맨몸으로 세파를 견뎌내는 단독자(單獨者)들의 땀내 나는 실존 앞에서 한낱 공허한 사치에 불과하다.
합리성으로 포장된 지적 허영의 성벽을 부숴라. 남들보다 똑똑하게 진리를 깨달았다는 오만방자한 엘리트주의를 찢어발겨라. 진정한 구도자는 멸균실의 안락함을 박차고 나와, 날 것 그대로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껍데기를 처절하게 깨부수며 매일매일 피 흘리며 살아내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