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의 식탁은 욕망과 과잉의 투장이다. 자극적인 양념, 인공 첨가물, 야식과 폭식,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구하는 패스트푸드가 일상을 지배한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삼키면서도 몸은 만성적인 소화 불량과 피로, 성인병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서양의학이 칼로리와 영양소의 수치로 식단을 통제하려 들지만, 현대인들은 왜 먹을수록 몸과 마음이 허기지고 무너지는지 답을 찾지 못한다.
수천 년 전 《論語(논어)》 鄕黨(향당) 편에서 보여주는 성인(聖人) 공자의 식생활은 단순한 음식의 섭취를 넘어, 몸과 마음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정통 정신 양생학(精神養生學)의 정수를 담고 있다.
食不厭精 膾不厭細(식불안정 회불안제): 정갈하고 정성스러운 음식이 장부를 살린다
《論語(논어)》 鄕黨(향당) 편에서는 공자의 정결한 식사 원칙을 이렇게 전한다.
“食不厭精, 膾不厭細(식불안정, 회불안제)” 밥은 정결하게 되풀이하여 찧은 쌀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회는 가늘고 정성스럽게 썬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여기서 ‘정(精)’과 ‘세(細)’는 쾌락이나 사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준비할 때 부정함을 멀리하고, 장부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정성과 정결함을 다하는 자세를 뜻한다. 거칠고 오염된 음식은 몸 안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탁한 담음(痰飮)과 열독을 만들어 오장육부를 무너뜨린다. 음식을 정갈하게 다듬고 정성을 다해 씹어 삼키는 첫걸음이야말로 비위(脾胃)의 기운을 보존하는 최상위 양생법이다.
不時不食(불시불식): 때가 아니면 먹지 아니하고, 질서가 없으면 손대지 않는다
이어지는 공자의 섭생 원칙은 현대인의 엉망이 된 식습관을 준열하게 꾸짖는다.
“食饐而餲 魚腥而肉敗 不食. 惡色 不食. 惡臭 不食. 失飪 不食. 不時 不食. 割不正 不食. 不得其醬 不食(식의이애 어성이육패 불식. 악색 불식. 악취 불식. 실임 불식. 불시 불식. 할불정 불식. 부득기장 불식)” 밥이 쉰 것과 생선이 비리고 고기가 부패한 것은 먹지 않으셨다. 색이 나쁜 것은 먹지 않으셨고, 냄새가 나쁜 것은 먹지 않으셨다. 익은 정도가 알맞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셨고, 때가 아니면 먹지 않으셨으며(不時不食), 바르게 쓰이지 않은(바르게 잘라지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셨고, 알맞은 장(醬)이 없으면 먹지 않으셨다.
자연의 때와 몸의 때에 맞지 않게 먹는 밤늦은 야식, 부패하거나 자극적인 인스턴트 식품, 올바른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은 불량한 음식은 모두 몸 안의 사기(邪氣)를 지피는 독소다. 공자가 바르게 잘라지지 않은 고기(割不正)조차 거부한 것은, 음식 하나에 담긴 우주의 질서와 내 몸의 질서를 일치시키려는 수기(修己)의 결단이었다.
肉雖多 不使勝食氣(육수다 불사승식기): 절제함으로 내면의 군주를 바로 세우다
《향당》 편의 절정은 이 단호한 절제의 가르침으로 귀결된다.
“肉雖多, 不使勝食氣. 唯酒無量, 不及於亂(육수다, 불사승식기. 유주무량, 불급어란)” 고기가 비록 많다 한들 주식인 밥의 기운을 넘어서지 않게 하셨고, 오직 술은 정해진 양이 없었으나 어지러운 데까지 이르지는 않으셨다.
탐욕에 끌려 과식하거나 술에 취해 이성을 잃는 행위는 심장(心臟)의 신명(神明)을 부수고 생명의 정기를 탕진하는 비극이다. 내 몸이 필요로 하는 적절함을 알고, 화려한 유혹 앞에서 스스로 멈출 줄 아는 절제(節制)야말로 병마를 물리치는 강력한 방패다.
식탁에서 시작하는 선비의 양생학
공자의 일상은 섭생이 단순히 몸을 유지하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거룩한 수행(修己)임을 증명한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삼킬 것인가. 욕망의 수렁에서 벗어나 정결하고 바른 식탁을 차릴 때, 당신의 오장육부는 비로소 맑은 정기를 회복하고 흔들리지 않는 삶의 단단한 주도권을 되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