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010] 거룩한 직업은 없다: 주일의 성자, 평일의 노예

교회는 교묘하게 세상을 두 개로 쪼갠다. 목사의 설교, 성가대 찬양, 주방 봉사는 ‘거룩한 하나님의 일(聖)’이고, 당신이 평일 내내 피 터지게 돈을 버는 직장 생활이나 육체노동은 그저 먹고살기 위한 ‘세속적인 일(俗)’로 깎아내린다. 이 얄팍한 이원론 덕분에 교인들은 일주일 내내 땀 흘려 일하고도, 주일날 교회 봉사를 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시달리는 ‘평일의 노예’로 전락했다. 누가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고 거룩함을 독점했는가? 종교라는 이름의 거대한 직업 계급주의를 해체한다.


1. 원문 직역 (도마복음 77장 및 골로새서 3:2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만물(萬物) 위에 있는 빛(光)이다. 나는 전체(全體)다. 전체가 나로부터 나왔고, 전체가 나에게로 돌아왔다. 나무(木)를 쪼개어 보라, 내가 그곳에 있다. 돌(石)을 들어 올려라, 그러면 너희는 거기서 나를 발견(發見)할 것이다.” (도마복음 77장)

바울이 권면(勸勉)하였다.

“무슨 일(事)을 하든지 마음(心)을 다하여 주(主)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로새서 3장 23절)

2. 거룩함을 독점한 종교 기술자들

“목회는 성직(聖職)이고, 당신들의 직업은 평신도의 일상이다.” 한국 교회가 수십 년간 신도들에게 주입해 온 이 사기극의 목적은 단 하나다. ‘거룩함’을 목사와 교회 조직이 독점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통제하고 그들의 노동력과 재화를 교회로 흡수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신도들은 식당에서 뼈 빠지게 설거지하며 번 돈을 바치고도, 주일날 성가대 가운을 입지 못하면 신에게 덜 헌신했다고 자책한다. 이것은 폭력이다. 도마복음의 예수를 보라. 그는 으리으리한 성전(聖殿)의 제단 위가 아니라, ‘쪼개진 나무’와 ‘들어 올려진 돌’ 밑에 있다고 선언했다. 목수의 아들이었던 그는 피사체가 튀는 노동의 현장, 거친 땀방울이 흐르는 바로 그곳이 신이 거하는 가장 완벽한 성소(Sanctuary)임을 꿰뚫어 보았다.

새벽 3시, 남들이 잠든 시간 편의점 계산대에서 묵묵히 바코드를 찍으며 스스로의 밥벌이를 버텨내는 고단한 육체노동. 빌딩 숲에서 모욕을 견디며 가족을 먹여 살리는 치열한 엑셀 작업. 그 피 튀기는 생존의 현장이야말로 까만 가운을 입고 입술로만 거룩을 떠드는 자들의 강대상보다 수만 배는 더 눈물겹고 거룩한 ‘하나님의 일’이다.

3. 일상의 수도원을 지어라

당신의 땀방울을 ‘세속’이라는 단어로 모욕하는 자들의 설교를 쓰레기통에 처넣어라. 교회당 안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무보수 봉사를 해야만 상급이 쌓인다는 얄팍한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라.

당신이 쥐고 있는 걸레, 당신이 두드리는 키보드, 당신이 마주하는 차가운 새벽 공기가 바로 당신의 제단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밥을 지어 먹으며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그 고결한 노동이야말로, 신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예배다.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찢어라. 단독자에게는 숨 쉬는 모든 순간이 기도이며, 딛고 선 모든 땅이 광야의 수도원이다.

– 광야에서, Laot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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