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예배의 시작과 끝은 항상 다 같이 똑같은 글을 읊조리는 암송으로 장식된다. 시작할 때는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끝날 때는 ‘주기도문’으로 모임을 닫는다.
그러나 당신이 매주 아무 생각 없이 외우는 그 문장들이 사실은 신과의 대화가 아니라, 이성을 마비시키고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종교적 최면술’이자 ‘마법의 주문’이라면 믿겠는가? 기독교인들을 생각 없는 앵무새로 전락시킨 두 가지 영적 수면제의 실체를 폭로한다.
1. 원문 직역 (마태복음 6:7)
예수께서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또 기도(祈禱)할 때에 이방인(異邦人)과 같이 중언부언(重言復言, 빈말을 반복함)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태복음 6장 7절)
2. 통제를 위한 낡은 주문(Mantra)
첫째, 사도신경은 ‘충성 서약서’다. 사도신경은 예수가 가르친 적도 없고, 성경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수백 년이 지난 후, 로마 제국과 결탁한 종교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교리에 반대하는 사유(도마복음 등)를 ‘이단’으로 숙청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합의해 낸 선언문일 뿐이다. 매주 이것을 외우게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나는 기득권 교회가 정해준 교리에 단 한 치의 의심 없이 복종하겠습니다”라고 세뇌시키는 전체주의적 통제 장치다. 스스로 묻고 사유하는 단독자에게 이런 맹목적인 서약은 모욕이다.
둘째, 주기도문은 ‘종료 벨소리’로 전락했다. 예수가 기도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 남긴 위대한 텍스트가, 지금 한국 교회에서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 예배나 구역 모임을 끝마칠 때, 의미는 생각하지도 않고 속사포로 다다다다 외워버리는 주문이자 “이제 다 끝났으니 집에 가자”는 ‘종료 벨(Bell)’로 타락해 버렸다. 예수는 분명 “뜻 없이 빈말을 반복(중언부언)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정작 교인들은 예수의 기도를 가장 중언부언하는 주문으로 써먹는 기막힌 위선을 저지르고 있다.
3. 삶으로 읊조려라
신은 수백만 명이 똑같은 박자로 외워대는 앵무새들의 합창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종교가 입에 물려준 낡은 주문을 뱉어내라. 사도신경이라는 족쇄를 끊고, 주기도문이라는 영적 수면제에서 깨어나라.
단독자에게 진짜 기도란, 남이 적어준 문장을 입술로 달싹이는 것이 아니다. 치열하게 묻고 사유하며 얻어낸 진리를, 피 터지는 밥벌이의 현장 속에서 온몸으로 버텨내는 ‘삶의 태도’ 그 자체가 가장 거룩한 신앙고백이자 기도다.
자, 이제 앵무새의 합창을 멈추고 각자의 척박한 광야로 걸어 나갈 시간이다.
– 광야에서, Laotz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