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인들은 일요일(Sunday)을 ‘주일’이라 부르며 목숨을 건다. 일요일 오전 11시에 예배당 지정석에 앉아있지 않으면 신의 저주를 받을 것처럼 불안해한다.
그러나 기독교가 일요일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서기 32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이교도의 태양신 숭배일(Sun-day)을 국가 휴일로 지정한 정치적 야합의 결과일 뿐이다. 신은 일요일에만 출근하는 관료가 아니다. 날짜와 형식이라는 우상을 부수고, 진짜 영혼이 깨어나는 ‘광야의 단독자’들을 위한 새로운 모임법을 선포한다.
1. 원문 직역 (마가복음 2:27 및 로마서 14: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安息日)이 사람을 위(爲)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 (마가복음 2장 27절)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各各) 자기(自己) 마음으로 확정(確定)할지니라.” (로마서 14장 5절)
2. 요일의 파괴: 불금의 전복(顚覆)
광야에는 달력이 없다. 단독자들이 뜻을 모아 밥상을 차리는 바로 그 시간이 진짜 안식일(Sabbath)이다. 우리는 종교적 관성에 찌든 일요일 아침을 버린다. 대신, 일주일 내내 피 터지게 밥벌이를 감당하고 마침내 노동에서 해방된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오후’에 모인다. 세상이 욕망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 시간에, 가장 맑은 정신으로 고전을 읽고 진리를 논하는 난장(亂場)을 벌이는 것. 이것이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단독자들의 통쾌한 전복이다.
3. 주보를 찢은 자들의 5단계 모임법
광야의 모임에는 계급장(목사)도, 거래(헌금 바구니)도, 주술(축도)도 없다. 오직 영(Spirit)과 진리(Truth)만 남는 5단계의 파격만을 실천한다.
- 제1단계: 밥상 교제 (식탁 공동체) 거룩한 묵도 대신 소박한 ‘밥’으로 시작한다. 각자 싸 온 음식을 나누며, 한 주간 버텨낸 고단한 일상을 묻는다. 2천 년 전 초대교회의 역동성은 제단 앞이 아니라 밥상머리에서 시작되었다.
- 제2단계: 텍스트 직역 및 낭독 (스캐너 모드) 목사의 가공된 설교를 듣지 않는다. 도마복음, 논어, 황제내경 등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의 원문을 요약 없이 펼쳐놓고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는다. 종교적 덧칠을 벗겨낸 날것 그대로의 말씀(Logos)을 마주한다.
- 제3단계: 치열한 난장(亂場) 토론 덮어놓고 ‘아멘’ 하는 지적 자살을 거부한다. 읽은 텍스트를 두고 계급 없이 치열하게 묻고 의심하며 서로의 통찰을 부딪친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광야의 아고라(광장)다.
- 제4단계: 삶의 연대 (제로 재정) 조직 유지를 위한 헌금은 단 1원도 걷지 않는다. 누군가 삶의 위기에 처했다면, 형편이 닿는 자들이 직접 그 사람의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어준다. 중간 착취가 없는 100% 직거래 연대이자, 실체적인 ‘행함’이다.
- 제5단계: 각자의 광야로 파송 두 손을 들고 복을 내려주는 무당은 없다. 토론이 끝나면 서로 눈을 맞추고 인사한다. “각자의 광야에서 빛으로 살아냅시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의 밥벌이를 책임지는 치열한 일상으로 쿨하게 흩어진다.
4. 스스로 성소가 되어라
의식(Ritual)에 갇힌 종교는 죽었다. 특정한 날, 특정한 건물에 모여야만 신을 만날 수 있다는 얄팍한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 마라.
당신이 치열하게 땀 흘리는 일상이 성소이며, 마음 맞는 이들과 둘러앉아 나누는 밥상이 곧 제단이다. 달력을 찢고, 주보를 불태워라. 자유로운 영혼들의 거침없는 연대만이 이 부패한 종교 카르텔을 무너뜨릴 유일한 희망이다.
– 광야에서, Laotz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