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012] 의심을 죄(罪)로 만든 자들: ‘아멘’이라는 이름의 지적 자살

교회에서 가장 환영받는 교인은 ‘질문이 없는 사람’이다.
성경의 모순에 대해, 목사의 비논리적인 설교에 대해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면 십중팔구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덮어놓고 믿으십시오. 그것은 사탄이 주는 교만입니다.”
진리(Truth)는 어떠한 치열한 의심과 질문 앞에서도 살아남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왜 기독교의 신은 질문 하나에 노여워하는 옹졸한 독재자가 되었는가? ‘아멘’을 강요하며 당신의 사유를 거세하는 맹신의 사기극을 해체한다.

1. 원문 직역 (도마복음 2장 및 사도행전 17:1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구(求)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하기를 멈추지 말라. 그가 찾을 때에 고뇌(苦惱)할 것이요, 고뇌한 후에 경이(驚異)로워할 것이며, 마침내 모든 것 위에 군림(君臨)하게 될 것이다.” (도마복음 2장)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말씀(Logos)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聖經)을 상고(詳考, 자세히 따져 생각함)하므로…” (사도행전 17장 11절)

2. 생각하기를 포기한 노예들

“무조건 믿어라. 아멘 하라.” 이 말은 종교 카르텔이 신도들을 지배하기 위해 고안해 낸 가장 완벽한 마취제다. 왜 그들은 질문을 두려워할까? 신도들이 깨어나 스스로 묻고 사유(思惟)하기 시작하면, 성경의 모순과 목사들의 기만이 백일하에 드러나 권력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의심’을 불신앙이라는 중죄(重罪)로 둔갑시켰다. 이성이 마비된 자리에 ‘광신’을 채워 넣고, 논리가 사라진 자리를 ‘통성기도’의 아우성으로 덮어버린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지적 자살(Intellectual Suicide)이다. 성경의 베뢰아 사람들조차 바울의 설교를 듣고 “정말 그런가?” 하며 날마다 따져 묻고 연구(상고)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덮어놓고 바치는 맹목(盲目)만을 칭송한다.

3. 의심하라, 그것이 가장 위대한 기도다

질문하지 않는 자는 진리에 가닿을 수 없다. ‘아멘’이라는 기계적인 대답 뒤에 숨어 당신의 이성과 이마에 새겨진 빛을 꺼뜨리지 마라.

치열하게 묻고, 의심하고, 고뇌하라. 도마복음의 선언처럼, 그 뼈아픈 고뇌를 통과한 자만이 진리의 경이로움을 맛보고 마침내 스스로의 삶 위에 군림(君臨)하게 될 것이다. 질문을 억압하는 신은 우상이다. 그 옹졸한 독재자의 제단을 뒤엎어라. 단독자는 맹목의 늪을 건너,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찾는 광야의 철학자다.

– 광야에서, Laot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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