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중국 드라마 <점연화, 온난니(点燃我,温暖你)>를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IT 스타트업과 앱 개발, 프로그래밍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차가운 소재를 다룬 드라마이지만, 마지막 회를 덮고 난 뒤 가슴에 남은 잔향은 뜻밖에도 참 따뜻하고 묵직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드라마들이 빠르고 사이다 같은 전개, 쿨하고 계산적인 관계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 드라마는 도리어 우리가 1970~80년대 한국 멜로 문학과 영화에서 느끼곤 했던 ‘지독할 만큼 뜨겁고 투박한 순정’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습니다.
1. 거친 세상에 홀로 선 반항아, 그리고 그를 구원하는 순정
70~80년대 우리가 열광했던 청춘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들을 떠올려봅니다. 세상의 비극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방황하는 ‘천재적 반항아’, 그리고 그런 그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온전히 감싸 안는 ‘순수한 인물’의 구도는 당대 우리의 가슴을 가장 뜨겁게 울렸던 서사였습니다.
<점연화, 온난니>의 남주인공 리쉰은 천재 프로그래머이지만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는 고독한 인물입니다. 세상의 가혹한 시련과 억울한 모함 앞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는 여주인공 주윈의 모습은, 과거 세상 모두가 등돌려도 한 사람만을 바라보던 옛 시절의 묵직한 순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너는 나의 불꽃이었고, 나는 너를 따뜻하게 밝히는 공주였다.”
효용성과 손익을 따지는 요즘의 연애관에 지친 이들에게, 모든 것을 던져 서로를 지키는 이들의 사랑은 잊고 지내던 아날로그적 향수를 강렬하게 불러일으킵니다.
2.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는 헌신과 신의
이 드라마의 진짜 힘은 단순히 청춘의 한때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뜻밖의 비극과 3년의 수감 생활, 그리고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재기와 복수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세월을 함께 건너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 세상이 갈라놓아도 변하지 않는 마음: 모진 거절과 3년의 긴 이별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신뢰
- 바닥에서 다시 일어서는 비장함: 과거의 모든 것을 잃고도 오직 기술과 의지로 다시 일어서는 고투
- 너와 나,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구원이라는 믿음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결코 희석되지 않는 이들의 헌신과 도덕적 지조는, 과거 최인호나 조해일 작가의 고전 멜로가 전해주던 비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울림과 깊게 닮아 있습니다.
3. 우리가 잊고 살았던 ‘아날로그적 낭만’을 떠올리며
완주를 하고 나니, 드라마가 전하고자 했던 핵심은 최신 IT 산업이라는 포장지 속에 숨겨진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온기와 변치 않는 신의(信義)”라는 지극히 클래식한 진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편리하고 스마트해졌지만, 그만큼 ‘인생을 걸고 한 사람을 믿어주는 일’이나 ‘불꽃처럼 자신을 태워 세상과 맞서는 일’의 낭만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7080시절 밤을 새우며 가슴 졸이게 만들었던 그 뜨겁고 고결한 순정의 서사를, 21세기 중국 현대극의 옷을 입고 다시 만난 듯해 참으로 반갑고 기분 좋은 몰입이었습니다. 가슴속에 은은한 불꽃 하나를 지피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아니 일관(一觀)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