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인생의 매듭, ‘얽힐 전(缠)’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요즘 대륙을 뜨겁게 달구는 애증 로맨스 드라마들의 주제곡을 가만히 들어보면, 유독 자주 등장하는 글자가 하나 있다. 바로 ‘얽힐 전(缠, 중국어 발음 chán)’이다.

“누구도 도망칠 생각 마, 운명의 동아줄이 널 묶고 날 얽매도록 내버려 둬.”

가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 대중문화 속에서 ‘缠’은 종종 지독한 집착, 벗어날 수 없는 파멸적인 사랑, 혹은 서로를 갉아먹으면서도 끝내 놓지 못하는 마라맛 인연을 묘사할 때 쓰인다. 달콤하기보다는 끈적하고, 평온하기보다는 위태롭다.

하지만 한자의 뼈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풍경이 보인다. ‘缠’은 실 사(糸) 부수에 얽힐 전(廛)이 합쳐진 글자다. 본래는 여러 가닥의 실이 복잡하게 꼬여 묶여 있는 물리적인 상태를 뜻했다. 옛사람들은 이를 인간사에 빗대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맺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든 과정을 하나의 거대한 ‘얽힘’으로 보았다.

불교에서는 이 얽힘을 번뇌(煩惱)와 동의어로 보기도 한다. 마음이 외부의 대상에 묶여 자유롭지 못한 상태, 즉 결박(結縛)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얽힌 실타래를 보면 답답함을 느끼고 단숨에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에 지쳐 ‘단절’을 선택하는 현대인들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과연 끊어내는 것만이 정답일까?

실타래를 가위로 끊어버리면 당장은 후련할지 몰라도, 잘려 나간 실은 결국 짧은 조각이 되어 아무런 쓸모를 갖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타인과의 얽힘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상처는 받지 않겠지만 인연이 빚어내는 삶의 풍성한 무늬 또한 포기해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실을 끊어내는 칼이 아니라, 매듭을 다루는 지혜다. 너무 느슨하면 인연이 흩어지고, 너무 꽉 조이면 서로의 숨통을 조이게 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완벽한 밸런스, 즉 ‘정중(正中)’의 감각이 필요하다.

나를 옭아매는 집착의 ‘缠’을 부드럽게 풀어내어,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따뜻한 ‘인연(因緣)’의 매듭으로 다시 묶는 것. 그것이 고전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중용(中庸)의 삶이자,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가장 세련된 방식이 아닐까.

오늘 하루, 누군가와의 얽힘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면 조용한 공간에 앉아 완벽한 밸런스로 추출된 묵직한 커피 한 잔, 혹은 맑게 우려낸 차 한 잔을 마주해 보자. 뜨거운 향기를 천천히 들이마시며 마음의 여백을 찾다 보면, 단단하게 뭉쳐 있던 뇌리 속 실타래도 어느새 기분 좋게 느슨해져 있을 것이다.

게시자: 旭山 노정용

마음의 상태가 단정하지 못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마음과 생각을 집중할 수가 없어 물건을 보아도 제대로 볼 수 없고, 소리를 들어도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음식을 먹어도 음식의 진정한 맛을 알지 못한다. 『大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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