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에서 건져낸 불씨, ‘정중용덕(正中龍德)’의 새로운 장을 열며

살면서 누구나 상실을 경험하지만, 내게 있어 두 번의 ‘분서갱유’는 내 연대기의 일부가 도려내지는 것과 같은 뼈아픈 사건이었다. 청춘의 사유를 지탱하던 오천 권의 책이 고물상으로 향했던 첫 번째 상실, 그리고 치열했던 중국 유학 시절의 피와 땀이 서린 책들이 지하실의 습기에 무참히 썩어 들어간 두 번째 상실. 물리적인 책은 그렇게 허망하게 내 곁을 떠났다.

나의 두 번의 분서갱유(焚書坑儒) : 종이의 종말, 기록의 부활

by 旭山 노정용 | 2026/02/10

책을 사랑하는 이에게 '장서(藏書)'를 잃는 것은 자신의 연대기 일부가 도려내지는 것과 같다. 나에게는 인생...

그 참담한 기억을 곱씹으며, 나는 종이의 소멸을 넘어 곰팡이가 슬지 않는 불멸의 디지털 서재를 짓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렇게 상실에 대한 복수이자 승리의 기록으로 글을 써 내려가던 중, 어제 나는 다시 그 아픔의 현장인 형님의 집 지하실을 찾았다.

습기와 곰팡이가 집어삼킨 참혹한 책들의 무덤. 그 폐허를 찬찬히 살피던 중, 기적처럼 온전한 숨결을 유지하고 있는 책 몇 권을 발견했다. 표지는 얼룩지고 퀴퀴한 세월의 냄새를 품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활자만큼은 북경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탐독하던 그때 그 시절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었다. 혹독한 환경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나의 40대와 학문을 향한 열정의 생존자였다.

조심스레 그 책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품에 안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두 번의 전멸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은 이 책들은 나에게 어떤 운명적인 사명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썩어 문드러진 잿더미 속에서도 결코 소멸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는 사실을, 내 손에 쥐어진 이 묵직한 질감이 증명하고 있었다.

이제 이 생존자들은 나의 불멸의 서재, ‘정중용덕(正中龍德)’으로 들어올 것이다. 지하실의 어둠 속에서 구출된 이 귀중한 지식의 파편들은 나의 문장을 거쳐 다시 세상의 빛을 볼 것이다. 썩어 없어질 뻔했던 고전의 지혜와 치열했던 학문의 정수들이 이제 디지털의 공간에서 나와 융합하여 더욱 풍성하고 단단하게 거듭날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폐허에서 건져낸 작은 불씨. 나는 이 불씨로 ‘정중용덕’의 화로를 더욱 뜨겁게 달구려 한다. 살아남은 활자들이 내뿜는 묵직한 통찰이 앞으로 이곳에 어떤 깊이를 더해줄지, 이 새로운 부활의 여정을 벅찬 마음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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