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설(概說)
상한학파는 장중경(張仲景)의 《상한론(傷寒論)》에 대한 변증논치(辨證論治)와 이법방약(理法方藥)을 주요 과제로 연구하고 발휘하여 형성된 하나의 거대한 의학 유파이다. 지금까지 이 학파의 상한 관련 저작은 천여 종에 달하고, 의가(醫家)만 해도 칠백여 명에 이르러 중의학(中醫學)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대에 상한병을 연구한 의가는 매우 많았다. 왕도(王燾)의 《외대비요(外台秘要)》에는 당대(唐代) 이전 21개 의가의 경험이 모여 있으며 총 305조가 수록되어 있다. 그중 가장 성과가 뛰어난 여덟 명의 대가(八大家)는 장중경(張仲景), 왕숙화(王叔和), 화타(華佗), 진림구(陳廩丘), 범왕(范汪), 《소품(小品)》, 《천금(千金)》, 《경심록(經心錄)》이다. 《외대비요》에는 중경의 논설이 50조만 기록되어 있어, 왕도 역시 《상한론》 온본(全本)을 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손사막(孫思邈)은 《천금익방(千金翼方)·권구(卷九)·상한상(傷寒上)》에서 “강남의 여러 스승들이 중경의 방요(方要)를 은밀히 아껴 전하지 않았다”고 탄식하였다. 이는 중경의 《상한론》이 당시에는 널리 유통되지 못했고, 아직 하나의 학파를 형성하지는 못했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중경의 《상한론》은 서진(西晉) 태의령(太醫令) 왕숙화의 정리와 송대 신하 인억(林億) 등의 교정을 거쳐 마침내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고, 반면에 다른 의가들의 저작은 전용 서적으로 전해지지 못했으므로 공인된 상한설은 중경이 창시하고 완성한 것이 되었다. 다만 하나의 학파로서 존재하게 된 것은 송대(宋代) 이후의 일이다.
상한학파가 형성되고 발전하며 오랜 세월 쇠퇴하지 않은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상한론》이라는 책 자체가 매우 높은 이론적 의의와 실천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역대 의가들이 끊임없이 이를 충실히 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상한론》의 학술적 원류와 서적 완성 과정에 대해 중경은 자서(自序)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에 옛 교훈을 부지런히 구했다(乃勤求古訓)”는 것은 계승을 의미하고, “여러 처방을 널리 모았다(博采衆方)”는 것은 발휘를 의미한다. “《소문(素問)》, 《구권(九卷)》, 《팔십일난(八十一難)》, 《음양대론(陰陽大論)》, 《태록약록(胎臚藥錄)》을 선용(撰用)했다”는 것은 통째로 베낀 것이 아니라 고대 경락 의가들의 일체 양호한 의학 사상과 이론, 그리고 고대 경방가(經方家)들의 유효한 치법과 방약을 계승하고 발휘한 것이다. 또한 “맥을 찰영하고 증상을 변별했다(並羌脈辨證)”는 것은 자신의 실천적 관찰을 통해 저술했음을 말한다. 이 책의 연구 대상과 실천 기초는 비록 주로 외감상한병(外感傷寒病)에 있지만, 그가 제시한 변증논치 원칙은 보편적인 의의를 지닌다. 이 책은 실제 우리 나라(중국) 한대(漢代) 이전의 의학 성과를 총결하여 고대 의학 이론과 임상을 결합시켰으며, 고대 경락 의가들이 ‘이론은 있으나 방약이 없던’ 결함과 고대 경방가들이 ‘방약은 있으나 이론이 없던’ 결함을 극복하여 이법방약을 하나로 관통시켰고, 내용이 명확하고 체계적이어서 중의학에서 선대를 계승하고 후대를 열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염(李濂)의 《의사(醫史)·장중경보전(張仲景補傳)》에 따르면, 같은 시대의 화타(건원 145~208년, 이 연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음. 《후한서(後漢書)·화타전(華佗傳)》에 화타가 “나이가 백 세에 가까웠으나 오히려 장년의 모습을 유지하여 당시 사람들이 신선이라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에 따르면 화타가 64세까지만 살지는 않았을 것임)가 《상한론》을 읽고 “이것은 진정 사람을 살리는 책이다(此真活人書也)”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후세의 의가들은 이 책을 숭상하여 “의문(醫門)의 규범(規矩)”, “치병의 종본(宗本)”, “방서(方書)의 조상(祖)”으로 삼지 않은 이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이 완성된 때가 동한(東漢) 말년의 거대한 동란기로, 당시는 사회가 혼란하고 전쟁이 매년 이어졌으며, 게다가 인쇄 조건이 없었고 사람들의 보수적인 사상 때문에 원본이 흩어져 완전하지 못하였고, 널리 유통되거나 응용되지 못했다. 후세의 의가들이 이 책을 수집, 정리, 연구, 발휘한 과정이 바로 상한학파의 형성, 발전 및 흥성의 과정이었으며, 크게 세 가지 발전 단계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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