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자후(獅子吼)

—— 《삼명통회(三命通會)》 논명정법대강(論命正法大綱) (부박류(附駁謬))

《삼명통회(三命通會)》는 명학(命學) 분야의 일대 거저(巨著)로, 《연해자평(淵海子平)》으로부터 전통 사주명학(四柱命學)의 핵심 정신을 온전히 물려받았습니다. 이 책은 조화(造化)의 원리, 사주(四柱)의 조합, 절기(節氣)와 시령(時令) 방면은 물론이고 납음신살(納音神煞), 용신(用神)의 희기(喜忌), 십신(十神)의 길흉(吉凶), 격국(格局) 조합을 증명하는 명조 사례(命例), 그리고 부문(賦文)의 수록과 해석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면을 빠짐없이 논술하였습니다. 내용이 광대하고 정밀하며 사안의 핵심을 날카롭게 짚어내어(廣大精微鞭辟入裏), 전통 사주논명(四柱論命) 정법(正法)의 주류를 대표하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신봉통고(神峰通考)》의 혼란스러움이나 《적천수(滴天髓)》의 편협함과 비교해 본다면, 그 뛰어남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삼명통회(三命通會)》 논명의 대강(大綱)은 크게 용신(用神), 십신(十神)의 길흉 분별, 그리고 격국(格局)이라는 세 가지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용신(用神)이 지닌 본래의 참된 의미에 관해서는, 필자가 이미 『자평용신원리고판(子平用神原理考辨)』에서 전면적으로 논술한 바 있습니다. 이른바 용신(用神)이란 사주(四柱) 내에서 쓰임이 있는 신(神)을 말하며, 월령(月令)의 인원(人元)을 위주로 삼습니다. 재(財)·관(官)·인(印)·식(食) 등 길신(吉神)은 생조(生)하고 보호(護)하여 순용(順用)하는 것이 용신의 관건이며, 살(煞)·상(傷)·인(刃) 등 흉신(凶神)은 제어(制)하고 화(化)하여 역용(逆用)하는 것이 용신의 관건입니다. 사주 전국의 모든 길신(吉神)은 마땅히 생왕(生旺)하고 파손됨이 없어야 하니 이는 용신(用神)으로 하여금 일주(日主)를 보좌하게 함이요, 모든 흉신(凶神)은 마땅히 제화(制化)되고 부축받지 않아야 하니 이는 용신(用神)으로 하여금 일주(日主)에게 복종하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

십신(十神)의 길흉을 구별하는 것은 술가(術家)들이 명칭을 정립한 큰 뜻이며, 그 원리는 모두 조화(造化)의 일음일양(一陰一陽)이 배합되어 도(道)를 이루고 편음편양(偏陰偏陽)은 병(疾)이 된다는 이치에서 전개된 것입니다. 《삼명통회·논오행생극(三命通會·論五行生剋)》에서는 “만물(萬物)은 음양(陰陽)의 합체(合體)가 아니면 조화롭게 생겨날(化生)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컨대 정관(正官)과 일간(日干)의 관계를 보면 정관은 남편(夫)이요 일간은 아내(婦)가 되니, ‘부부(夫婦)’가 한 쌍의 음양으로 서로 배합되면 관직(官場)의 수많은 변화가 생겨납니다. 또한 정재(正財)와 일간(日干)의 관계에서는 일간이 남편(夫)이요 정재가 아내(妻)가 되니, ‘부부(夫婦)’가 한 쌍의 음양으로 서로 배합되면 재운(財運)의 수많은 변화가 생겨납니다. 인사(人事)로 말하자면, ‘부부’가 합해져 자연스레 작은 가정이 꾸려지고, 그 뒤를 이어 자녀의 잉태와 양육, 부부 혼인의 변천, 가운(家運)의 변화, 궁통(窮通)·수요(壽夭)·부귀(富貴)·빈천(貧賤) 등 일련의 가정사가 발생하고 진화하게 됩니다. 반대로 가정 내 모든 사체(事體)의 발생과 연역을 살펴보면 그 근원은 ‘부부’가 상배(相配)하고 교합(交合)하는 시점에 있으니, 이는 실로 대도(大道)의 근원이요 조화(造化)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미루어 보건대, 만사의 발생과 변화는 일음일양(一陰一陽)의 교감과 조합을 그 원시(原始)로 삼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일간(日干)과 비교하여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정당한 배합으로 유정(有情)하게 조화(造化)를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두 길신(吉神)이라 하니 정재(正財)·정관(正官)·정인(正印)·식신(食神)이 그것입니다. 반면 양(陽)과 양(陽)끼리(두 남자가 함께 살 수 없음) 혹은 음(陰)과 음(陰)끼리(두 여자가 함께 살 수 없음)처럼 짝을 이루지 못하고 무정(無情)하여 조화(造化)를 이루기 어려운 것은 모두 흉신(凶神)이라 하니 편관(偏官)·편인(偏印)·편재(偏財)·상관(傷官)이 그것입니다. 양인(羊刃), 비견(比肩), 겁재(劫財) 등 형제에 해당하는 성(星)에 이르러서는 대개 흉(凶)으로 논하는데, 이는 그들이 나의 재(財)를 겁탈(劫)하고, 나의 관(官)을 나누어 가지며, 나의 인(印)을 빼앗기 때문입니다. 《삼명통회·명통부(三命通會·明通賦)》에 이르기를 “진관(眞官)·진재(眞財)·진인(眞印)·진록(眞祿)은 곧 천지(天地)의 음양(陰陽) 정기(正氣)가 상생(相生)하고 상극(相剋)하는 올바른 이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르기를 “관(官)·인(印)·재(財)·식(食)은 본래 길신(吉神)이니 손상(損傷)이나 깨어짐(破)이 없어야 마침내 양호(良)하다 할 수 있고, 상(傷)·효(梟, 편인)·살(煞)·인(刃)은 본래 흉신(凶神)이니 만약 제복(制伏)하거나 거류(去留)하고 합화(合化)함이 있다면 일컬어 쓰임을 바꾸어 복을 짓는 것(轉用爲福)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연해자평·희기편(淵海子平·喜忌篇)》의 목록에 이르기를: 기뻐하는 것(喜)은 길신(吉神)이요, 꺼리는 것(忌)은 흉신(凶神)이라 하였습니다. 부문(賦文)에 또 이르기를 “만일 시(時)에서 칠살(七煞)을 만났더라도 이를 보았다고 하여 반드시 흉(凶)한 것은 아니며”, “만일 상관(傷官)과 월건(月建)을 만났더라도 흉(凶)한 곳에 처하였다고 하여 반드시 흉(凶)한 것은 아니다”, “일간(日干)이 기운이 없는데 시(時)에서 양인(羊刃)을 만나도 흉(凶)이 되지 않으나, 겁재(劫財)와 양인(羊刃)은 시(時)에서 만나는 것을 가장 꺼리며; 세운(歲運)이 병림(幷臨)하면 재앙이 즉시 이른다” 등등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부문(賦文)들은 사주 중에서 살(煞)·상(傷)·효(梟)·인(刃)을 흉신(凶神)으로 삼는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며, 이러한 흉물(凶物)들은 오직 제화(制化)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그 흉악함을 면할 수 있습니다. 부문에 또 이르기를 “관성(官星)은 정기(正氣)이니 형충(刑冲)을 가장 꺼린다”, “관(官)이 있고 인(印)이 있어 파(破)함이 없으면 묘랑(廟廊, 조정)의 인재다”, “인수(印綬)가 손상(傷)을 입으면 혹 영화로움이 오래가지 못한다” 등등이라 하였으니, 이는 재(財)·관(官)·인(印)·식(食)이 본래 모두 길신(吉神)이므로 생왕(生旺)함을 기뻐하고 극파(克破)됨을 가장 꺼린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격국(格局)에 대한 논의는 가장 중요합니다. 격국은 곧 사주(四柱) 전체를 판단하는 큰 틀(大框架)입니다. 어떤 학문이든 일정한 법도와 규범(規矩方圓)이 있듯이, 사주명학(四柱命學) 또한 그 나름의 기본 법칙과 기준인 격국(格局) 이론을 갖추고 있습니다. 《삼명통회(三命通會)》와 《연해자평(淵海子平)》 두 책의 명(命)을 논하는 심혈이 온전히 여기에 부어져 있으나, 애석하게도 대다수 후대 사람들은 그 속에 담긴 참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컨대 《신봉통고(神峰通考)》라는 책은 전적으로 《연해자평(淵海子平)》을 본떠 편찬되었으나, 격국(格局)을 논술함에 있어서는 아는 듯 모르는 듯 매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그 책에 열거된 명조 사례들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월상정관격(月上正官格)의 경우, 《연해자평(淵海子平)》은 오직 월령(月令)에 있는 정관(正官)이라는 단일한 기준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지만, 《신봉통고(神峰通考)》에서 든 명조 사례들은 이러한 월령의 기준을 철저히 무시한 채 시상(時上)이나 연상(年上)의 정관까지 마구 뒤섞어 논하여 오류가 속출합니다. 이 책의 「논상관식신(論傷官食神)」 대목에서는 파탄이 더욱 심각한데, 뜻밖에도 진상관(眞傷官)이니 가상관(假傷官)이니 하는 설을 꺼내어 이른바 하목견화(夏木見火)를 진상관(眞傷官)이라 하고 춘목견화(春木見火)를 가상관(假傷官)이라 운운하니, 육격(六格)의 바른 이치(正理)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탓입니다. 《적천수(滴天髓)》라는 책에 대해서는 후대 사람들이 몹시 받들어 모시지만(推崇備至), 필자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임씨(任氏)는 《삼명통회(三命通會)》와 《연해자평(淵海子平)》의 참된 지식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으며, 용신(用神)의 본래 의미와 십신(十神)의 길흉 구별, 그리고 격국(格局)의 배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책의 「팔격(八格)」 중에서는 심지어 격국(格局)이 일간(日干)과 무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오직 일간이 왕(旺)하면 억누르고(抑) 약(弱)하면 도와주는(扶) 것만을 취하여 명(命)을 논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관살(官煞)」 장(章)에서 열거한 명조 사례에서 범한 오류를 보면 《신봉통고(神峰通考)》의 행태와 똑같고, 그 「상관(傷官)」 장(章)에서는 모두 월령(月令)의 상관격(傷官格)을 기준으로 십신의 조합과 배치를 논해야 비로소 이치에 맞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적천수(滴天髓)》라는 책은 지지의 형해파(刑害破), 세운(歲運), 여명(女命), 육친(六親), 신살(神煞), 정격(正格), 외격(外格) 등 여러 중요한 방면에서 《연해자평(淵海子平)》과 《삼명통회(三命通會)》 등 수백 년간 고인들이 정밀하게 연구한 성과를 송두리째 부정해 버렸으니, 어찌 이리도 경솔하고 고집스러움의 극치란 말입니까? 이는 그저 잡술사(術士)의 편협한 소견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임씨(任氏)가 「서귀(鼠貴)」를 논함에 있어 “쥐(鼠)는 그저 갉아먹는 쥐(耗子)일 뿐인데 어찌 귀함이 있겠는가”라고 주장한 것은 참으로 부패한 선비의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십간(十干)의 귀인(貴人)이야말로 사주학의 근원이요 육임(六壬) 입과(立課)의 주춧돌이며, 그 안에는 참으로 지극한 이치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지지(地支)의 형해파(刑害破) 역시 육임(六壬)의 응용에서 단 하나도 어긋남이 없거늘, 어찌 말 한마디로 이를 함부로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사주학의 납갑(納甲) 학설 중에는 여전히 지지의 형해파(刑害破)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마땅히 깊이 재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격국(格局)을 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오직 후대의 심효첨(沈孝瞻) 선생만이 홀로 《연해자평(淵海子平)》과 《삼명통회(三命通會)》의 용신(用神) 이념, 십신(十神)의 길흉 분별과 육격(六格)의 대강을 온전히 깨달으셨습니다. 애석하게도 민국(民國) 시대 서락오(徐樂吾)의 『평주(評注)』가 원저의 본뜻을 왜곡하고 제멋대로 점을 찍고 구두를 나누며(胡亂點綴) 개인의 주관적인 뜻을 억지로 끼워 넣어 본질과 동떨어지게 만들었으니, 이로 인해 『자평진전(子平眞詮)』이라는 아름다운 옥(美玉)에 흠집(瑕)이 생기고 밝은 구슬(明珠)이 어둠 속에 던져진 격이 되어 사람들을 한없이 안타깝게 합니다. 심선생(沈先生)께서 「논용신(論用神)」 중에서 서술하신 바는 실로 고법(古法)으로 격국(格局)을 논하는 정법(正法)이니 마땅히 만 번 중시해야 합니다. 그 내용에 이르기를: “팔자의 용신(用神)은 오로지 월령(月令)에서 구한다. 일간(日干)을 월령(月令)의 지지(地支)에 배합하여 생(生)하고 극(克)함이 서로 다름에 따라 격국(格局)이 나뉜다. 재(財)·관(官)·인(印)·식(食)은 용신(用神) 중에서 선(善)한 것이니 순용(順用)해야 하는 것이요; 살(煞)·상(傷)·겁(劫)·인(刃)은 용신(用神) 중에서 불선(不善)한 것이니 역용(逆用)해야 하는 것이다. 마땅히 순용할 때 순용하고 역용할 때 역용하여 배합이 적절하면 모두 귀격(貴格)이 된다.” 이 단락의 글은 심선생의 용신관(用神觀)과 십신(十神)의 길흉 분별 이념을 철저히 천명하고 있으며 고인(古人)의 정법(正法)에 완벽히 부합합니다. 또 이르기를 “이런 까닭에 선(善)하여 순용(順用)하는 것은, 재격(財格)은 식신(食神)이 상생(相生)함을 기뻐하고 관(官)을 생(生)함으로써 인(印)을 보호하며; 관격(官格)은 재(財)가 투출하여 상생(相生)함을 기뻐하고 인(印)을 생(生)함으로써 관(官)을 보호하며; 인격(印格)은 관살(官殺)이 상생(相生)함을 기뻐하고 겁재(劫財)로써 인(印)을 보호하며; 식신(食神)은 신왕(身旺)하여 상생(相生)함을 기뻐하고 재(財)를 생(生)함으로써 식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불선(不善)하여 역용(逆用)하는 것은, 칠살(七煞)은 식신(食神)이 제복(制伏)함을 기뻐하고 재(財)와 인(印)이 도와주는 것을 꺼리며; 상관(傷官)은 인(印)을 차서 제복(制伏)함을 기뻐하고 재(財)로써 화(化)하는 것을 기뻐하며; 양인(陽刃)은 관살(官煞)이 제복(制伏)함을 기뻐하고 관살(官煞)이 둘 다 없는 것을 꺼리며; 월겁(月劫)은 관(官)이 투출하여 제복(制伏)함을 기뻐하고 재(財)를 이용하여 식상(食傷)으로 화(化)하는 것을 기뻐하니, 이것이 순용과 역용(順逆)의 대략적인 요체이다.” 이 단락의 글이 가장 중요한데, 육격(六格) 배합의 요점을 서술하고 있으며 모든 정격(正格)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발단됩니다. 또 이르기를 “오늘날 사람들은 오로지 제강(提綱, 월령)을 위주로 삼아야 함을 알지 못한 채 사주의 천간 글자들을 만연하게 살피며 희기(喜忌)를 보는데, 심지어 정관(正官)이 인(印)을 차고 있는 것을 보면 정관과 정인이 쌍전(雙全)하다고 여겨 인수(印綬)와 함께 논하고; 재(財)가 투출하고 식신(食神)이 있는 것을 보면 재(財)가 식신을 만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식신생재(食神生財)라 하여 식신격(食神格)과 함께 논하고; 편인(偏印)이 투출하고 식신(食神)이 있는 것을 보면 설신(泄身)의 빼어남(秀)으로 여기지 않고 효신탈식(梟神奪食)이라 하여 제화(制)를 써야 한다고 논하고; 살(煞)을 만났는데 식신이 제복(制伏)하고 인(印)이 드러난 것을 보면 식신이 살을 거두어주는(去) 것으로 여기지 않고 살인상생(煞印相生)이라 하여 인격(印格)과 함께 논하고, 식신이 살(煞)을 만난 것과 함께 논하며; 더욱이 살격(煞格)에 양인(陽刃)을 만난 것을 양인(陽刃)이 몸(身)을 도와 제복(制伏)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칠살(七煞)이 양인(陽刃)을 제어하는 것으로 여겨 양인(陽刃)이 살(煞)을 드러낸 것과 함께 논한다. 이 모든 것이 월령(月令)을 알지 못한 채 함부로 논하는 까닭이다.” 심선생(沈先生)께서는 여기에서 논명(論命)의 커다란 갈림길을 지적하셨는데, 논명(論命)은 반드시 월령(月令)으로써 저울질(權衡)을 삼고 일주(日主)를 표준으로 하여 희기(喜忌)를 구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후세에 성행한 “병약(病藥)”설과 “용신(用神)”관입니다. 사주(四柱)를 판단하는 것은 자연히 술가(術家)의 본체이지 결코 의사(醫家)의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데, 어떤 사주든 하나를 쥐고서 병(病)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식으로 본다면 어찌 가소롭지 않겠습니까? 오늘날에는 더욱이 적지 않은 명리 연구자들이 속설의 영향을 받아 사주를 아예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고, 몇 글자는 기신(忌神)이요 몇 글자는 용신(用神)이라며 장벽을 분명히 세우는데, 실로 어린아이들이 편싸움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 널리 유행하는 이른바 “혁신파(創新派)”들은 참으로 남에게 존경받기 어렵습니다(令人不肯恭維). 학력도 낮고 경험도 얕으며, 고서(古書)를 아직 다 읽어보지도 꿰뚫어 보지도 못했고 전통 학술을 전면적으로 파악하거나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덜컥 하나의 “혁신” 체계를 내놓으니, 이는 틀림없이 근원 없는 물(無源之水)이요 뿌리 없는 나무(無根之木)이며 사상누각(空中樓閣)에 불과합니다. 사악한 논리와 그릇된 학설이 그 속에 가득하여 세상의 이목을 어지럽히고 후학(後生)들을 망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이른바 “격부작용(隔不作用, 떨어져 있으면 작용하지 않음)”이나 간지(干支) “규율(規律)”이라는 주장이 가장 바르지 못합니다. 첫째, 그 어떤 사주 고서(古書)에도 이런 주장이 제기된 바가 없습니다. 둘째, 이러한 주장은 순전히 개인의 주관적인 억측(一廂情願)에 따른 규정일 뿐 원리적인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반대로 고서를 살펴보면 “연(年)을 근본으로 삼고 일(日)을 위주로 삼는데, 주본(主本, 일주와 연주)이 화합하지 않으면 부자(父子)가 불화한다”, “만약 시(時)에서 칠살(七煞)을 만나고 월(月)에서 이를 강력하게 제어하면 그 살(煞)이 도리어 권위와 도장(權印)이 된다” 등의 부문(賦文)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 이는 연(年)의 간지(干支)와 일(日)의 간지, 월(月)의 간지와 시(時)의 간지가 완전히 상호 작용할 수 있음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또 《연해자평(淵海子平)》 중에서 “무릇 연월일(年月日)의 길신(吉神)은 마땅히 시(時)를 이끌어 생왕(生旺)한 곳에 이르러야 하고; 흉신(凶神)이 있으면 마땅히 시(時)를 이끌어 제복(制伏)하는 땅에 이르러야 한다. 만약 시(時) 상에 길신(吉神)이나 흉신(凶神)이 있다면 또한 반드시 연월일(年月日) 상의 길한 자가 그것을 생(生)하고 흉한 자가 그것을 제어(制)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법(古法) 정법(正法)의 논술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듯이, 연월일시 사주의 간지는 철저히 서로 왕래하며 작용하고 연락을 취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격부작용(隔不作用)”이라는 말이 나온단 말입니까!

《삼명통회(三命通會)》에서는 이미 이렇게 밝혔습니다: 사주 논명(論命)은 연(年)을 근본(根本)으로 삼아 간(干)을 취하고, 월(月)을 제강(提綱)으로 삼아 지(支)를 취하며, 일(日)을 주(主)로 삼아 간(干)을 취하고, 시(時)를 보좌(輔佐)로 삼아 간지(干支)를 취합니다. 유년(流年)은 군(君)이 되어 간(干)을 위주로 취하고, 대운(大運)은 신(臣)이 되어 지(支)를 위주로 취합니다. 또한 유년(流年)은 하늘(天)이요, 대운(大運)은 땅(地)이며, 사주(四柱)는 사람(人)이니 사람이 천지(대운과 유년)의 변화 속에 거처함에 길흉(吉凶)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논명의 대강(大綱)은 확고한 근본이며 사주학(四柱學)의 초석입니다. 이러한 원리들을 뒤엎는 것은 사주 전체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주 논명 중에는 “고층차(高層次, 높은 수준)”, “저층차(低層次, 낮은 수준)” 따위의 이론적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으며, “활단(活斷, 유연한 해석)”, “반단(反斷, 반대 해석)”, “법무정법(法無定法, 정해진 법칙이 없음)” 등과 같은 그럴싸한 궤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주학은 그 자체로 규구(規矩, 규칙)와 방원(方圓, 법칙)의 정법(正理)이 있으니, 그 실마리를 따라 찾아가며(按圖索驥) 사주를 평판(評判)하면 반드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올바른 사주 추리 이론으로 명(命)을 예측하는 것은 무척 빠르고 간편한 일이라, 하나의 사주가 일단 주어지면 곧바로 직단(直斷)하여 한눈에 바닥까지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사주를 평판(評判)함에 있어 “시아버지는 시아버지대로 옳다 하고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옳다(公說公有理 婆說婆有理)” 우기는 식의 혼란은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는 오직 하나뿐이고 해당 사주에 대응하는 인생의 실제 사실 또한 오직 하나뿐입니다. 옆길로 새는 사이비 학설(旁門左道)에 이르러서야 천만 가지 잡설이 생겨날 뿐입니다.

정작 사주학(四柱學)에서는 사주 이론을 사용하여 원리를 해석하려 들지 않으면서, 엉뚱하게 무슨 육효(六爻) 괘(卦)나 신수(神數) 따위를 가져와 명(命)을 고찰하고 해석하려 하는 것은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쫓는 것(舍本逐末)이며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을 헤매는(舍近求遠) 짓이니, 모두 학문을 연구하는 바른 길(正途)이 아닙니다.

진리는 가려내지 않으면 밝혀지지 않고(眞理不辯不明), 학술은 낡은 것을 깨뜨리지 않으면 올바로 세워지지 않습니다(學術不破不立). 어떤 연구든 비록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 할 수는 있으나, 방종하고 범람(放肆泛濫)하게 두어서는 안 되며, 뻔히 보이는 사악한 이치와 그릇된 학설이 흑백을 뒤바꾸고 진실을 호도하게(混淆黑白顚倒是非)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사주 연구의 관건은 반드시 올바른 노선을 걷는 데 있습니다. 방향이 곧 깃발입니다! 대략 말하자면, 첫째로 먼저 학문의 뿌리가 되는 조종(祖宗)의 서적, 원천(源頭)의 서적과 집대성된 서적(大成之書)을 단단히 파악하여 그 안의 기본 이념을 정확하게 깨달아야지, 결코 개인의 사적인 억측과 부회(附會)가 그 속에 스며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로 과거의 고서(古書)들에 수록된 명조 사례들을 성실하게 하나하나 파고들어 고법(古法) 논명의 참된 뜻을 밝혀낸 연후에, 그림을 그리듯 점진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자연스레 사주학 전체의 참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꺼려야 할 것은, 배우면서 묻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분별하지 않고 행하지 않아 가슴속에 뚜렷한 주관(定見) 하나 없이 망상만 거듭하다가(妄念妄出), 갖가지 조잡한 책과 그릇된 학설에 현혹되어 머릿속이 온통 풀죽처럼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책을 보면 볼수록 생각의 실타래가 꼬이고 어두워져 마침내 이론이 혼탁해지는 지경에 이릅니다. 실제로 이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일이며, 결국에는 한숨을 내쉬며 공부를 팽개쳐버리고 사주를 알 수 없는 현학(玄學)이라 치부하거나 혹은 스스로 깨달음이 부족하고 연이 닿지 않아 배울 수 없다고 자책하게 됩니다(이러한 심리적 좌절을 겪은 이가 적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사주 명학(命學)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신비한 현학(玄學)이 아니라 나름의 확고한 이치(定理)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학문은 여느 일반적인 학술과 마찬가지로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나아가고(按步就班) 올바른 이론의 지도 아래 학습하기만 하면, 계단을 오르듯 점진적으로 나아가(拾階而上) 마침내 능히 깨우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주에서 일주(日主)의 성쇠(盛衰)를 판단하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끊임없이 논쟁하며 일치된 견해를 보이지 못하는데,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먼저 《연해자평(淵海子平)》과 《삼명통회(三命通會)》에 수록된 모든 실례들을 상세히 통계 내어 그 안의 규칙을 발견하였고, 이어서 방대한 부문(賦文)의 해석을 살펴본 뒤에야 비로소 그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삼명통회·옥정오결(三命通會·玉井奧訣)》 부문(賦文)에 “만물이 다 각자의 뜻이 있으나, 몸(身)이 능히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하였는데 그 주해(註解)에 이르기를: “귀기(貴氣)가 혹 많거나 무거운데 자신(自身)이 기운이 없다면 어찌 이를 감당(勝任)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것의 유(類)를 따르거나 그 기운에 응하는 격이라면 이에 해당하지 않으나, 그 밖에는 한 마디로 말해 몸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병이 들어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과 같고 꽃이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 구절의 해석은 신약하여 재성을 감당하지 못하는(身弱不任財) 조건과 그 결과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또 《삼명통회·명통부(三命通會·明通賦)》 부문(賦文)에 “천원(天元, 일간)이 기운이 없으나 도리어 일하(日下, 일지)에서 흥륭(興隆)함이 마땅하다” 하였는데 그 주해에 이르기를: “고인들이 일(日)을 논함에 있어 일시(日時)로써 말하였다. 예를 들어 일간(日干)이 월령(月令)에서 비록 기운이 없더라도 만약 앉은 지지(日支) 및 시(時)의 지지를 얻는다면 이 또한 성실지명(成實之命, 결실을 맺는 명)이 된다. 만약 기운이 없는데 일시(日時)마저 쇠패(衰敗)의 땅에 놓여 있다면 종신토록 막히고 곤궁함을 가히 알 수 있다.” 이 주해를 통해 일간(日干) 성쇠(盛衰)의 관건이 월령(月令)의 천시(天時)와 일시(日時)의 두 지지(兩支)에 달려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무릇 사주의 이 세 곳(월령, 일지, 시지)에 일간의 록왕(祿旺)의 뿌리가 내리고 충파(冲破)나 극상(克傷)을 당하지 않는다면, 곧 신왕유기(身旺有氣)한 것으로 보아 어떠한 재관(財官)도 능히 감당해 내는 성실(成實)한 명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세 곳이 모두 일간의 사묘절패(死墓絶敗)에 해당하는 쇠약한 자리라면 곧 신약(身弱)함을 알 수 있으니, 관살(官煞)의 극을 견뎌내기 어렵고 정재·편재의 소모 또한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신약(身弱)하여 재관(財官)의 귀한 기운(貴氣)을 감당하지 못하는데 대운에서조차 도와줌이 없다면 평생토록 곤궁하고 고통스럽게 됩니다! 이로써 보건대, 일간의 성쇠(盛衰)를 논하는 것은 결코 큰 난제가 아니며 오히려 무척 간단명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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