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루터가 찢은 휘장을 다시 꿰맨 자들에게 고함)
1. 원문 직역 (마태복음 23:8-10)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Rabbi, 선생)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Brothers)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Father)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비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Instructor)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2. 도로 가톨릭 (Re-Catholicization)
500년 전, 마틴 루터는 “사제(Priest)는 필요 없다, 만인이 제사장이다”라고 외치며 가톨릭의 중재자 시스템을 박살 냈다. 그것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저항자)’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2026년, 지금의 개신교를 보라. 그들은 루터가 찢어버린 휘장을 다시 꿰매어 달았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그들은 완벽하게 ‘도로 가톨릭‘으로 회귀했다.
첫째, 목사(Pastor)의 성역화
그들은 가톨릭 신부(Father)를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강대상 위에서 ‘주의 종’, ‘영적 아버지’라 불리길 즐긴다. 평신도와 자신을 철저히 구별하며, 하나님과 신자 사이의 ‘브로커(Broker)’ 자리를 다시 차지했다. 예수는 “너희는 다 형제”라고 했으나, 교회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둘째, 성전(Temple)의 바벨탑
예수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며 성전을 부정했다. 초기 기독교는 건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은행 대출을 받아 거대한 시멘트 건물을 짓고, 그것을 ‘성전 건축’이라 포장한다. 부동산 크기가 곧 믿음의 크기가 된 이 현상은 종교가 아니라 ‘부동산 tlgoddjq’이다.
셋째, 헌금(Offering)의 면죄부화
중세 교회가 면죄부를 팔았다면, 현대 교회는 ‘축복권’을 판다. 십일조를 내면 복을 받고, 안 내면 믿음이 없다고 협박한다. 야베스의 기도를 들먹이며 탐욕을 ‘비전’으로 포장한다. 돈으로 신의 호의를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 이것은 ‘영적 매춘(Simony)’이다.
3. 광야의 외침
루터가 지금 한국 교회를 본다면, 다시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못을 박을 것이다.
아니, 못을 박을 문조차 없을 것이다. 이미 그 문은 ‘기득권’이라는 황금으로 도금되어 굳게 닫혔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죽었다. 그들은 저항 정신을 잃고 비대한 권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언한다.
제단(강대상)을 치워라.
마이크를 끄라.
우리는 중재자를 거부한다.
우리는 건물 밖으로 나간다.
광야에는 지붕이 없다.
그래서 하늘이 더 잘 보인다.
– 광야에서, Laotz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