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차가운 겨울의 침묵이 걷히고 온 누리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자연계의 만물은 약속이라도 한 듯 땅을 뚫고 싹을 틔워 올린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봄날 풍경은 이 찬란한 생명의 도약과는 거리가 멀다. 계절이 바뀌기 무섭게 극심한 봄철 피로감(춘곤증)에 시달리며 무기력하게 졸음을 쫓고, 만성적인 알레르기 비염과 안구건조증, 피부 트러블을 달고 산다. 봄이 오면 활력이 솟구치기는커녕 온몸이 솜이불을 덮은 듯 무겁고 찌뿌둥해질 뿐이다.
서양의학은 이러한 봄철 생체 변화를 ‘신진대사 급증에 따른 비타민 소비 증가와 호르몬 불균형’ 정도로 설명한다. 그러나 《黃帝內經(황제내경)》은 현대인이 겪는 봄철 질환의 본질이, 겨울 동안 감추어져 있던 낡은 기운을 내보내고 새로운 생명력을 밖으로 펼쳐 내야 하는 대자연의 엄숙한 명령인 ‘발진(發陳)’의 섭리를 거스른 데서 비롯된 생리적 충돌임을 파헤친다.
春三月 此謂發陳(춘삼월 차위발진): 묵은 것을 내보내고 새것을 더하는 계절
《素問(소문)》 四氣調神大論(사기조신대론)에서는 봄 석 달의 본질과 생명 운동의 형태를 이렇게 단호하게 선언한다.
“春三月 此謂發陳. 天地俱生 萬物以榮(춘삼월 차위발진. 천지구생 만물이영)” 봄 석 달은 이른바 ‘발진(發陳)’, 즉 겨울 동안 묵혀두었던 온갖 묵은 기운을 밖으로 내보내고 새롭게 솟아오르는 계절이다. 이때 하늘과 땅의 기운이 함께 생동하여 만물이 흐드러지게 번영한다.
봄은 오행(五行) 중 목(木)의 계절이자, 장부로는 간(肝)의 기운이 왕성해지는 시기다. 겨울철 엄숙한 추위 속에서 땅속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양기(陽氣)가 대지 위로 솟구쳐 오르듯, 인체 내부에서도 웅크려 있던 기혈이 밖으로, 또 위로 활발하게 뻗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몸 안의 기경팔맥과 경락이 꽉 막혀 있거나, 겨울 동안 쌓인 노폐물과 독소를 털어내지 못한 채 안으로만 웅크려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위로 힘차게 치솟아야 할 봄철 생명의 기운이 몸 안에서 꺾이고 갇히게 된다. 이 갇힌 기운이 속에서 열(熱)로 변해 머리를 어지럽히고, 눈을 짓누르며, 온몸의 근육을 찌푸둥하게 만드는 봄철 온병(溫病)과 만성 피로의 원인이 된다.
夜臥早起 廣步於庭(야와조기 광보어정): 몸의 빗장을 풀고 생명을 살리는 섭생
《黃帝內經(황제내경)》은 봄철 대자연의 생동하는 기운과 하나가 되어 내 몸의 생명력을 극대화하는 구체적인 행동 양식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夜臥早起 廣步於庭 被髮緩形 以使志生(야와조기 광보어정 피발완형 이사지생)” 밤에는 조금 늦게 자더라도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며, 뜰을 큼직하게 거닐어라. 머리를 풀어 내리고 옷차림을 느슨하게 하여 몸을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마음속에 생명의 의지가 돋아나게 하라.
- 첫째, 몸을 묶어두는 긴장의 끈을 풀기: 몸을 꽉 조이는 옷이나 경직된 posture는 위로 뻗어 나가야 할 간(肝)의 목(木) 기운을 억압한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복장을 느슨하게 하라는 고전의 가르침은, 겨울철의 수축과 긴장에서 벗어나 전신의 경락을 이완시키라는 생체학적 명령이다.
- 둘째, 억누르지 말고 생명을 살리기(生而勿殺): 봄날의 기운은 솟구치는 싹을 잘라버리듯 억누르면 병이 된다. 화를 내거나 마음을 졸여 간의 기운을 상하게 하지 말고, 타인과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 기운이 사방으로 순탄하게 뻗어 나가도록 도와야 한다.
逆之則傷肝(역지즉상간): 봄의 섭리를 거스른 자에게 내려지는 경고
만약 이 봄철의 발진(發陳) 섭리를 무시하고 집안에만 웅크려 있거나, 스트레스로 기운을 꽉 묶어두면 어떻게 되는가. 경전은 “봄 기운을 거스르면 간을 상하게 되고, 여름이 되었을 때 대위(寒變)가 생겨 밖으로 펼쳐져야 할 양기가 부족해진다”고 매섭게 경고한다.
봄에 싹을 틔우지 못한 나무가 여름에 무성한 잎을 피울 수 없듯, 봄철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지 못하면 하루 전체, 나아가 일 년 전체의 면역 틀이 사정없이 무너지고 만다.
묵은 옷을 훌훌 털어버리고 산책길에 올라 푸른 대지의 맑은 기운을 깊이 마시라. 봄날의 솟구치는 기운에 몸을 맡기고 생명의 문을 활짝 열 때, 당신의 오장육부는 비로소 묵은 독소를 털어내고 찬란한 활력을 되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