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낫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약이 부족했거나 병마가 너무 짙었다고 탄식한다. 그러나 5천 년 전의 의학 고전 황제내경 소문 제78편 징사실론(徵四失論)은 질병이 치유되지 않는 원인을 병이 아닌, 생명을 다루는 자의 오만과 무지에서 찾는다. 기백은 의사가 범하는 치명적인 네 가지 과실을 서늘하게 고발하며 치유의 진정한 조건을 묻는다.
- 현상에 집착하여 본질을 잃은 무지 기본적인 경맥의 위치는 누구나 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증상과 내면의 깊은 병기를 결합하지 못하고, 음양의 순역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껍데기만 보는 것이다. 정신을 집중하여 질병의 이면을 꿰뚫는 일관된 식견이 없으면서, 잡다한 지식을 긁어모아 완벽한 치료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첫 번째 실패다.
- 배움이 얕은 자의 만용과 허세 스승의 가르침을 온전히 체화하지도 못했으면서 함부로 기이하고 잡다한 요법을 쓴다. 남의 성과를 훔쳐 자신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얕은 기술을 함부로 휘둘러 결국 환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과를 낳는다. 치유의 도구가 흉기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것이 두 번째 실패다.
- 환자의 삶을 지워버린 처방전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빈부귀천의 사회적 상황, 거처하는 환경의 좋고 나쁨, 몸의 한열과 평소의 식습관, 심지어 겁이 많은지 용감한지 그 타고난 성정까지 살펴야 한다. 병이라는 현상만 보고 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구체적인 삶을 입체적으로 엮어내지 못한다면, 스스로의 머리만 어지럽힐 뿐 결코 바른 치유에 도달할 수 없다. 이것이 세 번째 실패다.
- 원인을 묻지 않고 병명을 날조하는 위선 환자가 오면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는지, 생활 습관이 무너졌는지, 무엇에 중독되었는지 그 뿌리부터 물어야 한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맥부터 짚으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병명을 지어내고 아는 체를 한다. 이는 기술이 저열한 자가 자신의 무능을 덮기 위해 벌이는 위선일 뿐이다. 이것이 네 번째 실패다.
치유의 가장 큰 보배, 종용(從容)과 화완(和緩) 의학의 도리는 천지와 필적할 만큼 고심(高深)하고 원대하다. 얕은 기술로 병을 대하다 실패하면 자신이 배운 바를 원망하거나 스승을 탓하고, 우연히 병이 나으면 자신의 공로로 포장하기 바쁘다.
고전은 말한다. 병을 치료하는 기술의 으뜸은 의사의 종용(從容)하고 화완(和緩)한 태도에 있다고. 흔들림 없이 여유롭고 부드러운 마음가짐이야말로 생명을 대하는 자의 유일한 무기다. 징사실론의 이 서늘한 경고는 비단 의사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수많은 문제 앞에서 현상 이면의 본질을 살피지 않고 얕은 기술과 오만으로 덤벼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의 밑바닥을 비추는 묵직한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