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합쳐 간지(干支)라 부르는데, 이는 우리나라 선민(先民)들이 창조해 낸 것으로 기수(記數: 수를 기록함), 기서(記序: 순서를 기록함), 기시(記時: 시간을 기록함), 그리고 공간의 방위(方位)를 기록하는 데 쓰이는 부호 시스템이다.
천간(天干)은 총 열 자리가 있으니: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이다.
지지(地支)는 열두 자리가 있으니: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이다.
천간지지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연대가 너무 오래되어 오늘날까지도 확실한 단정은 없으나, 고고학 및 문자 방면의 자료 중에서 약간의 정보를 추적해 찾아냈다.
《사기(史記)·율서(律書)》 중에 십모(十母), 십이자(十二子)의 기록이 있는데, 십모는 곧 십천간(十天干)이고 십이자는 곧 십이지지(十二地支)이다. 간지(干支)를 모(母)·자(子) 관계에 비유하고 부(父)·자(子) 관계로 말하지 않은 것은 분명 모계사회(母系社會)의 흔적이다.
또 다른 해석은 이러하다: 간(干)은 간범(干犯: 침범함), 간요(干擾: 방해함)이고; 지(支)는 지탱(支撐), 지지(支持)이다. 《좌전(左傳)》 중에 “하늘이 무너뜨리는 바는 지탱할 수 없다(天之所壞,不可支也)”라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하느님(老天爺)이 노하여 홍수, 태풍 혹은 지진 따위의 재해가 발생하면 땅 위의 사람들이 지탱해 내기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많이 나타나자 태고의 인류는 천간과 지지를 배합하여 주기를 만들어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과 재상(災祥: 재앙과 상서로움) 사이의 연계를 기록하고 탐색하려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형(字形)으로부터 간지의 기원을 탐구하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중국 최초의 문자는 상형자(象形字)여서 문자의 형상에 내재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갑(甲) 자는 식물의 열매 같고 밖으로 드러난 꼬리는 마치 과일의 꼭지 같으며; 또 마치 동물의 단단한 껍질 같기도 한데, 《사기(史記)》에서는 곧 “만물이 갑(甲: 껍질)을 쪼개고 나오는 것(萬物剖符甲而出也)”이라고 여겼다. 을(乙) 자를 《한서(漢書)》에서는 “을(乙)에서 힘써 비집고 나온다(奮軋于乙)”로 해석하였는데, 뜻인즉 식물이 막 여린 싹을 틔웠으나 아직 흙 속에 묻혀 있어 흙에 눌려 구부러진 상태로 막 힘을 내어 위로 솟아오르려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곽말약(郭沫若)은 해석하여 말하기를 “을(乙)의 상(象)은 물고기의 창자(魚腸)이다”라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을(乙)은 머리를 치켜들고 기어가는 뱀이다” 등으로 여기기도 한다. 신(辛)은, 《사기(史記)》에서 “만물이 신(辛)에서 새로 생겨나므로 신(辛)이라 이른다(萬物之辛生,故曰辛)”고 여겼으며, 자형 또한 식물이 막 생기가 돌아 위로 자라나기 시작하는 모양과 비슷하다.
지지(地支)에 쓰인 글자 또한 자형(字形)에서 상(象)을 취한 것이 많으나 문자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천간지지가 있게 되자 태고 시대의 사람들은 밤낮의 규칙에 근거하여 간지로 날을 기록(干支記日)하기 시작하였으니,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이 마땅히 “날(日)”의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자로 날을 기록하는 방법은 결승기사(結繩記事: 노끈을 묶어 일을 기록함)와 비교할 때 위대한 질적 변화이자 문명의 도약이다. 오늘날 확보된 자료로 보건대 갑골문(甲骨文) 중에 이미 간지로 날을 기록한 기재가 있다: “갑진일(甲辰日)에 큰 광풍이 일고 월식(月食)이 있었다…… 을유일(乙酉日)에…… 다섯 사람이……” (《은허서계정화(殷墟書契菁華)》 참조).
(그림 68. 갑골문 천간 / 그림 69. 갑골문 지지) (갑골문 글자 배열: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 자(子), 축(丑: 필자는 이 글자에 대해 추가 고증이 필요하다고 여김),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
간지로 날을 기록하는 것(干支記日)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전설에 따르면 황제(黃帝) 시대에 기원하여 황제가 즉위할 때 갑자년(甲子年), 갑자월(甲子月), 갑자일(甲子日), 갑자시(甲子時)로 정했다고 하나 결국 전설일 뿐이다. 《사기(史記)·은본기(殷本紀)》에 “갑자일(甲子日)에 주왕(紂王)의 군대가 패하자 보옥(寶玉)으로 만든 옷을 입고 불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왕은 역사상 유명한 황음무도한 제왕이니 나라가 망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죽을 때도 매우 격식을 차려 주보옥의(珠寶玉衣)를 걸치고 나서야 끓는 물과 타는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구절은 오히려 우리에게 간지로 날을 기록했다는 증거를 남겨주었으니, 기원전 11세기에 이미 갑자(甲子)를 써서 날을 기록했음을 설명해 준다. 어떤 학자의 고증에 따르면 늦어도 춘추 시대 노 은공(魯隱公) 즉 기원전 722년부터 시작하여 청대(清代) 선통(宣統) 3년(1911년)에 이르기까지 줄곧 연속해서 간지로 날을 기록하여 이미 2,6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우리는 간지로 날을 기록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버리지 않았으며, 단지 양력(公曆)으로 날을 기록하는 것이 주류를 차지했을 뿐이다.
🔒 본 글은 상위 10%만 개방된 프리미엄 자료입니다
정중용덕(正中龍德) 회원가입
by 旭山 | 프리미엄 가이드
황제내경 고전 완역본, 자평정해 심층 해설이 담긴 성역입니다. 과거의 모든 보존 자료를 제한 없이 열람하시려면 멤버십에 합류해 주십시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