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027] 우리는 어떻게 신을 멸균실에서 광야로 해방시켰는가: 삼위일체의 실존적 재구성
기성 종교는 ‘삼위일체’라는 신비로운 교리를 방패 삼아 2천 년간 대중의 사유를 통제해 왔다. 반면, 최근 ‘첫열매들’과 같은 신흥 영적 엘리트들은 이 교리를 과학과 역사로 해독했다며 환호한다. 그러나 그들이 파악한 삼위일체는 완벽하게 통제된 ‘멸균실의 수학 공식’에 불과하다.
그들은 과학으로 창조주(성부)를 증명하고, 역사적 팩트로 예수(성자)를 긍정하며, 논리가 머릿속에 납득되는 현상(성령)을 구원이라 부른다. 이는 거대한 우주의 신을 인간의 얄팍한 IQ 안으로 끌어내려 ‘논리의 포로’로 가두어 버린 지독한 오만이다. 우리는 신을 그 비좁은 멸균실에서 끄집어내어, 피와 땀이 튀는 광야로 해방시켜야 한다. 정용닷컴이 걷는 광야의 삼위일체는 교리문답이 아니라, ‘피 흘리며 살아내는 실존적 우주’다.
1. 증명당하는 신에서 ‘우주의 절대적 질서(道)’로 우리의 성부(聖父)는 과학적 변증을 통해 존재를 승인받아야 하는 옹졸한 인격신이 아니다. 저 하늘 보좌에 앉아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자판기 기계도 아니다. 황제내경과 자평정해가 꿰뚫어 본, 만물을 생성하고 소멸시키는 차갑고도 완벽한 우주의 섭리이자 뼈대다. 우주의 이치는 인간의 얄팍한 지식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에고를 부수고 철저히 ‘합일(天人合一)’해야 하는 거대한 물결이다.
2. 박제된 역사에서 현재를 살아내는 ‘단독자(나)’로 그들은 성자(聖子)를 2천 년 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한 사람에게만 독점시킨 뒤, 그를 사후세계로 가기 위한 ‘구원의 발권기’로 취급한다. 그러나 도마복음이 선포하듯, 진리는 역사책 속에 박제되어 있지 않다. 진리를 깨닫고, 편의점의 척박한 밤과 같은 거친 현실 속에서 그 진리를 몸으로 살아내는 ‘바로 지금 여기의 나(단독자)’가 곧 성자다. 진리는 흙먼지 묻은 나의 일상 속에서 육화(肉化)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3. 논리적 다운로드에서 ‘껍데기를 부수는 야성(野性)’으로 그들에게 성령(聖靈)은 성경의 퍼즐이 머릿속에서 완벽히 풀릴 때 주어지는 엘리트 클럽의 멤버십 인증 마크(Download)다. 그러나 진짜 성령은 안락한 소파 위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거친 광야로 내몰아 낡은 껍데기를 찢게 만드는 역동적인 기(氣)이자 ‘야성(野性)’이다. 우주의 진리(성부)와 나의 실존(성자)을 진동시켜 폭발하게 만드는 에너지다.
우리가 쟁취해야 할 진짜 삼위일체는, 거대한 우주의 이치(성부)가 야성적인 깨달음의 에너지(성령)를 통해, 척박한 현실을 맨몸으로 살아내는 나(성자)와 완벽하게 합일되는 실존적 완성이다.
암호 해독가들의 멸균실에서 벗어나라. 진리는 얄팍한 논리로 해독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광야에서 나를 부수며 몸으로 창조해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