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醫學(현대의학)은 눈부신 發展(발전)을 이룩했다. 현미경의 발명 이래로 인간은 疾病(질병)의 원인을 세포 단위로 쪼개어 보았고, 이제는 DNA의 羅列(나열) 속에서 運命(운명)의 결함을 찾아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逆說的(역설적)으로, 의학이 미시적인 세계로 깊이 파고들수록 우리는 더 많은 ‘不治病(불치병)’이라는 이름의 絶望(절망)과 마주하고 있다.
파킨슨병, 류마티스 관절염, 치매, 그리고 샤르코 마리 투스병(CMT)과 같은 유전 질환들. 현대의학이 이 질환들 앞에 ‘不治(불치)’라는 宣告(선고)를 내릴 때, 그 기준은 構造的(구조적)인 復元(복원)의 不可能(불가능)에 있다. 파괴된 신경 세포를 되살릴 수 없고, 변이된 유전자를 뜯어고칠 수 없기에 의학은 敗北(패배)를 認定制(인정)하고 ‘進行(진행)의 遲延(지연)’이라는 소극적 방어선으로 후퇴한다. 과학의 이름으로 내려진 이 냉혹한 선고 앞에서 환자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主權(주권)을 잃은 채 무력하게 스러져간다.
그러나 과연 生命(생명)의 본질이 이토록 무기력한 것인가?
이 깊은 絶望(절망)의 질문에 대해, 동양의학의 최고 經典(경전)인 《黃帝內經(황제내경)》은 전혀 다른 차원의 哲學(철학)으로 치유의 길을 提示(제시)한다. 고전은 인간의 몸을 고장 나면 버려야 하는 機械(기계)의 부속품으로 보지 않았다. 인체는 대자연과 호흡하는 작은 宇宙(우주)이며, 끊임없이 흐르는 氣血(기혈)과 陰陽(음양)의 均衡(균형)으로 유지되는 躍動的(역동적)인 질서 그 자체다.
서양의학이 ‘變異(변이)’와 ‘損傷(손상)’에 집착할 때, 《黃帝內經(황제내경)》은 ‘調和(조화)’와 ‘生氣(생기)’에 주목한다. 비록 先天(선천)의 精(정)이 부족하여 뼈와 근육이 마르더라도, 後天(후천)의 脾胃(비위)를 길러 氣血(기혈)을 끝없이 공급하면 몸은 무너지지 않는다. 뇌의 髓(수)가 말라 몸이 요동치더라도, 肝(간)의 風(풍)을 잠재우고 腎(신)의 물을 채워주면 생명의 불꽃은 다시 고요히 타오를 수 있다.
이 連載(연재)는 현대의학의 成果(성과)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양의학이 세밀하게 밝혀낸 疾病(질병)의 현상들을 《黃帝內經(황제내경)》이라는 거대한 哲學(철학)의 용광로에 넣어 臟腑(장부)와 經絡(경락)의 언어로 再解釋(재해석)하려는 치열한 試圖(시도)다. 병의 원인을 도려낼 수 없다고 해서 치유마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帶病延年(대병연년), 즉 질병을 안고서도 氣(기)의 균형을 맞추어 天壽(천수)를 누리는 위대한 養生(양생)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는 宣告(선고)는 오직 ‘構造的(구조적) 完治(완치)’를 목표로 할 때만 성립한다. 이제 우리는 시선을 돌려 生命(생명)의 秩序(질서)를 회복하는 旅程(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서양의학이 絶望(절망)의 마침표를 찍은 바로 그곳에서, 經典(경전)은 다시 치유의 첫 장을 펼친다.
불치의 運命(운명)에 맞서는 거대한 장부의 질서, 그 장엄한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