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값비싸고 진귀한 음식을 입에 넣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아무리 아름다운 절경 앞에 서도 마음속에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나이가 들어 미각과 시각이 둔해졌거나, 단순히 피곤해서 그렇다고 치부해 버립니다. 그러나 수천 년 전 쓰인 동양의학의 정수, 《황제내경(黃帝內經)》 영추 제17편 ‘맥도(脈度)’는 이 서늘한 감각 상실의 진짜 원인을 뼛속 깊은 곳에서 찾아냅니다.
무감각은 내면이 붕괴하고 있다는 경고다.
“심기가 조화로우면 혀가 오미를 분별하고, 비기가 조화로우면 음식을 먹을 때 자미(滋味)가 있다… 오장이 불조화하면 칠규(七竅)가 통하지 못한다.”
우리의 눈과 귀, 코와 입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단순한 감각 기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오장(五臟)의 생명력이 밖으로 피어난 꽃입니다. 삶의 맛과 향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혀와 코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 경쟁과 스트레스 속에서 내 속(오장)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굳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면이 조화를 잃고 막혀있는데, 어찌 바깥세상의 아름다움이 들어올 틈이 있겠습니까?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으려면 밖으로 더 강하고 자극적인 것을 좇을 것이 아니라, 불화(不和)하고 있는 내 안의 장부를 먼저 어루만져야 합니다.
소통이 완전히 단절될 때, 생명도 멈춘다
이 내면의 불화와 막힘을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요? 기백은 기운이 체류하고 뭉쳐 마침내 음양의 소통이 완전히 끊어진 최악의 상태를 ‘관격(關格)’이라 부르며 이렇게 경고합니다.
“음양의 기가 모두 성하여 서로 영운하지 못하는 것을 관격이라 한다. 관격이 출현하면 수명을 마치고 정침(正寢)할 수 없다.”
내 안의 음과 양이 팽팽하게 맞서 서로 섞이지 못하고 단절되면, 결국 몸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는 비단 육체에만 국한된 생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과 관계 속에서도 무수한 ‘관격’이 일어납니다. 부부 사이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혹은 조직 내에서 각자 자기의 억울함과 주장(기운)만 극도로 내세우고 타인의 기운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소통은 단절되고 그 관계는 결국 비참한 파국을 맞이합니다. 내 고집을 꺾고 막힌 문을 열어 기운을 섞지 않는 한, 살길은 없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고이지 않아야 썩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무서운 단절을 막고 삶의 감각을 다시 깨울 수 있을까요? 해답은 인체의 생명력을 싣고 달리는 교맥(蹻脈)의 운행 원리 속에 숨어 있습니다.
“기의 운행은 정지할 수 없으니, 마치 물의 흐름이 쉬지 않는 것과 같다… 단지 끝나면 다시 시작하는(終而復始) 순환을 할 뿐이다.”
생명력의 본질은 무언가를 쟁취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는 데 있지 않습니다. 둥근 고리처럼 쉼 없이 흘러가는 데 있습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성공에 도취하여 마음이 고여있거나, 뼈아픈 실패에 갇혀 절망 속에 기운이 멈춰있을 때 병은 시작됩니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미련 없이 털고 일어나 다시 새로운 순환(復始)을 시작하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내 안을 흐르는 물길이 막힘없이 흘러갈 때, 굳게 닫혔던 칠규가 열리고 잃어버렸던 삶의 다채로운 맛과 향기가 다시 밀려들어 올 것입니다.
당신의 삶은 지금 단절된 채 썩어가며 고여 있습니까, 아니면 물처럼 집착 없이 끝없이 갱신하며 흘러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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