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은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바이러스의 침투와 세포의 변이를 찾는다. 그러나 5천 년 전의 의학 고전 황제내경 소문 제77편 소오과론(疏五過論)은 환자의 신체를 만지기에 앞서, 그의 지갑과 인생의 이력서를 먼저 살피라고 명한다.
- 탈영(脫營)과 실정(失精): 잃어버린 자들의 병 기백은 진찰을 할 때 반드시 환자가 과거에 고귀했다가 훗날 비천해졌는지(嘗貴後賤), 혹은 부유했다가 빈곤해졌는지(嘗富後貧)를 물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권력을 잃은 자의 병을 탈영이라 하고, 재산을 잃은 자의 병을 실정이라 부른다. 이들은 밖에서 사기(邪氣)가 침입하지 않았음에도, 상실감과 절망이 안에서부터 오장의 기혈을 갉아먹어 신체가 하루하루 수척해진다. 현미경으로는 병균을 찾을 수 없고 어떤 기기로도 장부의 이상을 발견할 수 없으나, 환자는 때때로 원인 모를 두려움에 떨며 껍데기만 남은 채 죽어간다. 인간의 육체는 사회적 지위와 자본의 붕괴라는 중력에 가장 먼저 짓눌리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 감정의 폭주와 육체의 파산 질병은 결코 외부의 타격으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소오과론은 갑작스러운 환락과 고통, 안일했던 삶 뒤에 찾아온 극심한 생활고가 인체의 정기(精氣)를 고갈시킨다고 말한다. 몹시 화를 내면 음기를 상하고, 몹시 기뻐하면 양기를 상한다.
감정의 폭주와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궤적은 그 자체로 육체에 투여되는 치명적인 독약이다. 우매한 의사는 이 감정의 파산과 삶의 몰락을 읽지 못하고 눈앞의 육체적 증상만 좇아 보약과 침술을 함부로 남발하다 환자의 명줄을 끊어놓는다. 이것이 고전이 경고하는 의사의 치명적인 과실(過失)이다.
- 기내위보(氣內爲寶): 지켜야 할 것은 오직 내면에 있다 병을 치료하는 최고의 원칙에 대해 소오과론은 단 한 구절로 쐐기를 박는다.
“치병지도, 기내위보 (治病之道, 氣內爲寶).”
병을 치료하는 진정한 도(道)는, 기운을 내면에 보존하는 것을 가장 큰 보배로 삼는다는 뜻이다.
세상의 권력과 재물은 언제든 흩어지고 모인다. 어제의 공후가 오늘의 천민이 될 수 있는 것이 인간사의 섭리다. 밖으로 향하는 욕망과 집착에 자신의 기운을 모두 쏟아붓고 나면, 정작 상실의 순간에 나를 지탱할 내면의 힘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육체의 질병을 고치려면 그가 지나온 삶의 궤적과 감정의 역사를 먼저 읽어내야 한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망을 덜어내고 내면의 기운을 다잡아 주지 못한다면, 그 어떤 명약도 한낱 헛된 처방에 불과하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언제든 흩어질 밖의 허영인가, 아니면 안으로 단단히 다져진 보배로운 기운인가. 스스로의 내면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결국 다가올 삶의 파도 앞에서 육체마저 내어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