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물길은 어디서 솟아 어디로 가는가: 본수(本輸)가 묻는 흐름의 철학

현대인들은 통증이 생기면 아픈 곳만 들여다본다. 두통이 오면 머리를 쥐어뜯고, 속이 쓰리면 위장약으로 덮어버린다. 그러나 5천 년 전의 의학 고전 영추 제2편 본수(本輸)는 전혀 다른 지도를 펼쳐 보인다. 병의 뿌리를 찾으려면 아픈 몸통이 아니라, 손끝과 발끝으로 시선을 돌리라는 서늘한 통찰이다.

손끝에서 솟아올라 바다로 흘러가는 생명의 강 본수는 인체의 기혈이 흐르는 길을 대자연의 물길에 비유한다. 기운이 처음 솟아나는 곳을 우물(井)이라 하고, 졸졸 흐르는 곳을 시냇물(滎)이라 하며, 기운이 쏟아져 들어가는 곳을 물 대는 곳(輸)이라 부른다. 나아가 그 기운이 넓게 통과하는 곳을 강물(經)이라 하고, 마침내 깊은 속으로 합쳐지는 곳을 바다(合)라 칭한다.

손끝과 발끝이라는 가장 작고 외진 곳에서 솟아난 생명의 우물은 팔꿈치와 무릎에 이르러 거대한 바다를 이루며 오장육부의 깊은 곳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정형수경합(井滎輸經合) 오수혈의 이치다. 장부의 거대한 붕괴도 결국 가장 사소하고 작은 기운의 발원지에서 빚어진 막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오래된 경락의 지도는 묵직하게 경고하고 있다.

계절의 박자에 맞추어 문을 여닫다 고전의 치유는 기계적인 찌름이 아니다. 본수는 봄에는 기운이 얕은 곳에 있으니 가볍게 찌르고, 겨울에는 기운이 깊숙이 숨어 있으니 깊게 찔러 머물러야 한다고 명한다. 치유란 내 몸의 기운이 사계절의 거대한 리듬과 어떻게 조응하는지를 살피는 고도의 예술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한겨울에 한여름처럼 땀을 쥐어짜며 달리고, 봄의 생기가 필요한 때에 차가운 방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천지의 리듬을 거스르고 내 몸의 계절을 잊은 대가는 고스란히 십이경맥의 반란으로 돌아온다. 대자연의 박자에 순응하지 않는 자에게 허락된 치유의 길은 없다.

본원을 탐구하고 흐름을 타라 본(本)은 근원을 캐묻는 것이고, 수(輸)는 막힘없이 실어 나르는 것이다. 내 몸과 삶에 깊은 병이 들었다면, 억지로 댐을 쌓고 억센 힘으로 물길을 비틀어 막을 일이 아니다. 손끝과 발끝에서 시작되는 가장 원초적인 생명의 우물이 탁해지지 않았는지, 그 작은 물줄기들이 만나는 길목에 탐욕과 분노의 찌꺼기가 쌓여있지 않은지 먼저 살펴야 한다.

오늘 당신의 물길은 고요히 흐르고 있는가, 아니면 막힌 채 썩어가고 있는가. 아프고 막힌 곳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어리석은 시선을 거두고, 가장 먼 곳에서 솟아오르는 생명의 발원지를 향해 조용히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흐르지 못하는 삶은 결국 웅덩이가 되어 썩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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