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028] 예수를 추방한 성전: 찢어진 휘장을 꿰매고 우상이 된 브로커들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보여주는 타락의 본질은 복잡한 신학적 논쟁이나 교리의 변질에 있지 않다. 그 모든 썩은 냄새의 근원은 단 하나의 치명적인 문장으로 요약된다. “교회에서 예수를 내쫓고, 목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예수는 십자가라는 간판 위로 쓸쓸히 밀려났고, 성전의 실권은 스스로 우상이 되어버린 ‘영적 브로커’들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 그들이 어떻게 신성(神性)을 찬탈했는지, 그 거대한 사기극의 구조를 해부한다.

1. 바지사장이 된 예수와 실소유주 목사

오늘날의 대형 교회들은 매주 강단에서 예수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짖지만, 실상 예수는 이 거대한 종교 비즈니스의 ‘바지사장’일 뿐이다. 교회라는 기업의 지분, 인사권, 재정권, 그리고 아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는 세습의 권력은 철저히 CEO인 목사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예수의 피와 십자가를 팔아 막대한 헌금과 권력을 거두면서도, 그 과실은 철저히 자신들의 몫으로 챙긴다. 예수를 찬양하는 화려한 찬양대의 노랫소리 뒤에서, 예수는 철저히 소외된 채 헌금을 끌어모으는 상표(Brand)로만 소비되고 있다. ‘거룩한 주식회사’에서 실소유주는 십자가에 달린 자가 아니라, 강단에서 호통을 치는 자다.

2. 찢어진 휘장을 다시 꿰맨 ‘영적 톨게이트’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둘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던 거대한 휘장이 찢어졌다. 그것은 더 이상 제사장이라는 중간상인 없이, 인간이 우주의 섭리와 직접 독대하는 ‘단독자(單獨者)’의 길이 열렸음을 의미하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삯꾼 목자들은 밥줄이 끊길 것을 우려해 그 찢어진 휘장을 기어이 다시 꿰매어 쳤다. 목사의 설교를 듣고, 축도를 받고, 안수를 거쳐야만 신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세뇌하며 신과 인간 사이에 거대한 ‘영적 톨게이트’를 세운 것이다. 자신들을 거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도록 통행료를 강요하는 이들은 율법학자가 아니라 흉악한 영적 브로커들에 불과하다.

3. ‘예수-되기’의 거세와 영적 노예화

가장 끔찍한 종교적 범죄는 목사들이 신자들을 스스로 서지 못하게 거세해 버린 것이다. 성경의 본질은 내 안의 에고를 깨부수고, 척박한 편의점의 밤과 같은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이 진리를 육화(肉化)하여 ‘예수가 되어 살아가는 것(Becoming Jesus)’이다.

하지만 목사들은 성도들이 영적 자립을 이루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신자들이 스스로 깨닫고 껍데기를 깨부수면 더 이상 브로커가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신자들을 “어리석은 양 떼”, “연약하고 무능한 죄인”으로 가스라이팅하며 영적 영아(嬰兒) 상태에 가두어 둔다.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자립적 사유를 마비시키고 맹신도로 길들여 영적 노예로 부리는 것이다.

예수가 쫓겨난 자리에 목사라는 우상이 군림하는 한, 그곳은 성전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다. 목사라는 영적 톨게이트를 때려 부수고, 다시 찢어진 휘장 너머 바람 부는 광야로 나아가라. 누군가의 순한 양 떼가 되기를 거부하고, 철저한 단독자로 서서 나 스스로 진리를 살아내는 예수가 될 때, 비로소 진짜 구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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