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運命)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는 흔히 체념을 떠올립니다.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굴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운명은 결승선이 정해진 닫힌 결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평생을 걸어가야 할 ‘선천적(先天的)인 지형도(地形圖)’에 가깝습니다. 어느 곳은 산이 높고, 어느 곳은 물이 깊으며, 어느 곳은 햇볕이 들지 않아 서늘합니다. 명리학(命理學)의 사주팔자(四柱八字)는 바로 이 지형의 굴곡을 정확히 기록해 둔 생명의 1차 설계도입니다.
우주의 기운이 교차하는 찰나에 부여받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편차는, 곧 우리 몸을 구성하는 오장육부(五臟六腑)의 강약(强弱)과 허실(虛實)로 직결됩니다. 목(木)이 거세어 숲이 우거진 자가 있고, 수(水)가 범람하여 땅이 차가운 자가 있으며, 화(火)가 타올라 물이 마른 자가 있습니다. 이 쏠림과 치우침 자체는 병(病)이 아닙니다. 단지 나라는 소우주(小宇宙)가 가진 고유한 체질이자, 외부의 병사(病邪)가 침입했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진지(陣地)일 뿐입니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성인은 이미 병든 것을 치료하지 않고, 아직 병들지 않은 것을 치료한다(聖人不治已病 治未病)”라고 하였습니다. 질병이 겉으로 드러나 형체를 갖추기 전에, 내 몸의 어느 곳이 취약한지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것. 이것이 바로 동양의학이 추구하는 최고(最高)의 경지인 치미병(治未病)입니다.
이 책은 바로 이 ‘치미병의 병법(兵法)’을 세우기 위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명리학을 통해 내가 타고난 선천적 지형을 정밀하게 정찰하고, 『상한론(傷寒論)』의 변증(辨證)을 통해 질병이 쳐들어올 이동 경로를 예측하며, 『방약합편(方藥合編)』이라는 실용적인 무기고를 열어 내 체질에 맞는 처방을 선제적으로 배치하는 통합적 전략을 담았습니다.
운명을 안다는 것은 그 앞에 무릎 꿇기 위함이 아니라, 그 지형을 십분 활용하여 내 몸을 온전히 경영하기 위함입니다. 선천(先天)의 불균형을 후천(後天)의 지혜와 섭생으로 조율할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운명에 휘둘리는 객(客)이 아니라 내 몸과 삶을 통제하는 진정한 주(主)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부디 이 책이 자신의 몸을 지키고 다스리려는 모든 이들에게, 캄캄한 밤바다를 밝히는 든든한 나침반이자 위급할 때 꺼내 볼 수 있는 비장(秘藏)의 병법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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