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편은 총 2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공자(孔子)와 제자들의 대화 및 제자들에 대한 공자의 인물평을 상세히 담고 있습니다. 특히 안연(顔淵)의 죽음에 대한 공자의 깊은 애통함이 절절하게 드러나며, 자로(子路), 자공(子貢), 염구(冉求) 등 핵심 제자들의 성향과 학문적 성취에 대한 분석이 돋보입니다. 또한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 불리는 뛰어난 제자들의 명단이 제시되고, 각 제자의 정치적 이상을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공자의 예악(禮樂) 중심 교육 철학과 치국(治國)의 도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1. 선진(先進)과 후진(後進)에 대한 평가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악(禮樂)의 수양에 있어 먼저 배운 선배(先進)들은 촌스러운 야인(野人)이라 하고, 나중에 배운 후배(後進)들은 문채가 나는 군자(君子)라고들 한다. 그러나 만약 내가 사람을 등용한다면, 나는 겉치레보다 질박한 본질을 지녔던 선배들을 따를 것이다.”
2. 진(陳)과 채(蔡)에서 고생한 제자들 회고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에서 고난을 함께했던 자들이 지금은 모두 내 문하(門下)에 있지 않구나.”
3. 공문십철(孔門十哲)
덕행(德行)에는 안연(顔淵),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이 뛰어나고, 언어(言語, 외교와 사령)에는 재아(宰我), 자공(子貢)이 뛰어나며, 정사(政事)에는 염유(冉有), 계로(季路)가 뛰어나고, 문학(文學, 시서예악의 학문)에는 자유(子游), 자하(子夏)가 뛰어났다.
4. 안연의 절대적 순종과 깨달음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안회(顔回)는 나를 돕는 자(의문을 제기하여 스승을 자극하는 자)가 아니로구나. 그는 내가 하는 말에 완벽하게 순응하여 기뻐하지 않는 적이 없었다.”
5. 민자건의 효성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효자(孝子)로구나, 민자건이여! 사람들이 그의 부모와 형제들이 그를 칭찬하는 말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구나.”
6. 남용(南容)의 신중함
남용(南容)이 ≪시경(詩經)≫의 ‘백규(白圭, 흰 구슬의 흠은 갈아낼 수 있으나 말의 흠은 돌이킬 수 없다는 내용)’ 시편을 하루에 세 번씩 반복해서 외우며 스스로를 경계하자, 공자께서 자신의 형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셨습니다.
7. 호학(好學)하는 제자 안연
계강자(季康子)가 제자 중 누가 배우기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안회라는 자가 있어 배우기를 진실로 좋아하더니, 불행히도 수명(壽命)이 짧아 죽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8. 안연의 장례와 덧널(槨)
안연이 죽었을 때, 그의 아버지 안로(顔路)가 공자의 수레(車)를 팔아 덧널(槨, 관을 덮는 바깥 널)을 마련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재주가 있든 없든 각자 자기 아들을 아끼는 법이다. 내 아들 이(鯉)가 죽었을 때에도 관(棺)만 있었고 덧널은 없었다. 내가 수레를 팔아 걸어 다니며 덧널을 마련해 주지 않은 것은, 나 역시 대부(大夫)의 뒤를 따르는 신분이기에 예법상 걸어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9. 하늘이 나를 버리셨다
안연이 죽자, 공자께서 통곡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아아!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10. 제자를 향한 지극한 슬픔
안연이 죽어 공자께서 매우 슬프게 통곡(慟哭)하시자, 곁에 모시고 있던 제자들이 “선생님께서 너무 지나치게 슬퍼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지나치게 슬퍼한다고? 이 사람을 위해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위해 그렇게 하겠느냐!”
11. 안연의 성대한 장례 절차
안연이 죽어 제자들이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려 하자, 공자께서 “예법에 어긋나니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이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자, 공자께서 탄식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안회는 나를 아버지처럼 대했는데, 나는 그를 아들처럼 (예법에 맞게 장례를 주도하여) 대하지 못했다. 이는 내 뜻이 아니라 저 몇몇 제자들의 뜻이다.”
12. 귀신과 죽음에 대한 가르침
계로(季路, 자로)가 귀신(鬼神) 섬기는 일을 묻자, 공자께서 “아직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하셨습니다. 다시 죽음(死)에 대해 묻자 “아직 삶(生)도 다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하셨습니다.
13. 제자들의 서로 다른 곁눈질
민자건은 공자 곁에 모시고 섰을 때 화기애애하고 곧은 모습이었고, 자로는 씩씩하고 굳센 모습이었으며, 염유와 자공은 온화하고 즐거운 모습이었습니다. 공자께서 이를 보시고 즐거워하시며 한편으로 걱정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유(由, 자로)와 같은 강직한 성격은 제 명에 자연스럽게 죽지 못할까 두렵구나.”
14. 노나라 장부(長府) 개축에 대한 비판
노(魯)나라 사람들이 장부(長府, 재물을 보관하는 창고)를 새로 고쳐 지으려 하자, 민자건이 “옛 제도를 그대로 따르면 어떠한가? 어찌 반드시 새로 고쳐 지어 백성을 수고롭게 해야 하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공자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은 평소 말을 잘 하지 않지만, 한 번 말을 하면 반드시 이치에 맞는다.”
15. 자로의 비파 연주와 학문적 경지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由, 자로)가 켜는 북방의 살벌한 곡조의 비파를 어찌 내 문하에서 연주하느냐?” 이 말씀을 듣고 다른 제자들이 자로를 얕보며 공경하지 않자,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의 학문은 이미 당(堂)에는 올랐으나, 아직 깊은 방(室)에는 들어가지 못한 것뿐이다.”
16. 자장(子張)과 자하(子夏)의 과유불급(過猶不及)
자공이 묻기를 “사(師, 자장)와 상(商, 자하) 중 누가 더 낫습니까?” 하니, 공자께서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공이 “그렇다면 사가 낫다는 말씀이십니까?” 묻자, 공자께서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過猶不及)”고 하셨습니다.
17. 부당한 세금 징수에 대한 성토
계씨(季氏)가 주공(周公)보다 부유했는데도 구(求, 염구)가 가신으로서 그를 도와 세금을 거두어 더욱 부유하게 해주었습니다. 공자께서 분노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도를 따르는 내 제자가 아니다. 제자들아, 북을 울려 그의 죄를 성토하는 것이 옳다.”
18. 네 제자의 성향
공자께서 평가하셨습니다. “시(柴, 자고)는 어리석고, 삼(參, 증자)은 둔하고, 사(師, 자장)는 외모에 치중하여 한쪽으로 치우쳤고, 유(由, 자로)는 거칠다.”
19. 안연과 자공의 운명과 재물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안회(回)는 도(道)에 거의 이르렀으나 자주 쌀독이 비어 가난했다. 반면 사(賜, 자공)는 운명(天命)을 따르지 않고도 장사를 해 재산을 늘렸는데, 그가 시장 상황을 예측하면 자주 적중했다.”
20. 선인(善人)의 도(道)
자장이 선인(善人)의 도(道)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본성은 착할지라도 옛 성현의 발자취를 밟으며 학문하지 아니하면, 궁극적인 성인의 경지(室)에는 들어갈 수 없다.”
21. 번지르르한 말과 진정한 군자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하는 것이 번지르르하고 이치에 맞다고 해서 인정해 준다면, 그가 과연 진정한 군자(君子)이겠는가, 아니면 단지 외모만 장엄하게 꾸민 자이겠는가?”
22. 제자의 성격에 따른 맞춤형 가르침
자로가 “들은 것을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부모와 형제가 살아 계시는데, 어찌 묻지 않고 들은 것을 바로 실천하겠느냐?” 하셨습니다. 염유가 “들은 것을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들은 것을 바로 실천해야 한다” 하셨습니다. 공서화(公西華)가 어리둥절하여 그 이유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求, 염유)는 매사에 물러서는 성격이므로 나아가게 독려한 것이고, 유(由, 자로)는 남보다 앞서려 하므로 물러서게 억누른 것이다.”
23. 공자와 안연의 끈끈한 사제지정
공자께서 광(匡) 땅에서 위협을 당하셨을 때, 안연이 뒤처졌다가 나중에 도착했습니다. 공자께서 안도하시며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 하시니, 안연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살아 계시는데, 제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
24. 진정한 대신(大臣)과 머릿수만 채우는 구신(具臣)
계자연(季子然)이 “중유(仲由)와 염구(冉求)는 위대한 신하(大臣)라 할 수 있습니까?”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비범한 인물을 물을 줄 알았더니, 유와 구에 대해 묻는구나. 이른바 위대한 신하란 바른 도(道)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그것이 안 되면 그만두는 자이다. 지금 유와 구 같은 자는 그저 머릿수나 채우는 신하(具臣)라 할 수 있다.” 계자연이 “그렇다면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를 자들입니까?” 하니, 공자께서 “임금이나 아버지를 죽이는 극악한 일이라면 따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25. 섣부른 벼슬이 사람을 망친다
자로가 학문이 부족한 자고(子羔)를 비(費) 지역의 읍재(관리)로 삼으려 하자, 공자께서 “남의 자식을 망치는 짓이다”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자로가 “거기에도 다스릴 백성이 있고 사직(社稷)이 있는데, 어찌 반드시 책을 읽은 뒤에야 학문을 배운 것이라 하겠습니까?” 하고 변명하니, 공자께서 “내가 이래서 말만 교묘하게 잘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하셨습니다.
26. 네 제자의 뜻을 묻다 (시좌장 侍坐章)
자로(子路), 증석(曾晳),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가 공자를 모시고 앉아 있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보다 나이가 조금 많지만, 나를 의식하지 말고 말해보아라. 평소에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데, 만약 누군가 너희를 알아주고 기용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자로가 경솔하게 가장 먼저 대답했습니다. “전차 천 대 규모의 제후국이 큰 나라 사이에 끼여 군대의 침략을 받고 연이어 기근까지 든다 해도, 제가 다스린다면 3년 만에 백성들을 용감하게 만들고,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알게 하겠습니다.” 공자께서 그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구(求)야,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염유가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사방 6, 70리나 5, 60리쯤 되는 나라를 제가 다스린다면, 3년 만에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악(禮樂)의 교화에 대해서는 다른 군자(君子)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적(赤)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공서화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능히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배우고자 합니다. 종묘(宗廟)의 제사나 제후들이 모이는 회맹(會盟)의 자리에서 예복과 예관을 단정히 갖추고, 작은 보좌역(司儀)을 맡고 싶습니다.”
“점(點)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증석이 연주하던 비파 타기를 멈추고 뎅그렁 소리와 함께 비파를 내려놓으며 일어나 대답했습니다. “앞서 세 사람이 아뢴 바와는 제 뜻이 다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상관이 있느냐? 각자 자신의 뜻을 말한 것뿐이다.” 증석이 말했습니다. “늦은 봄(暮春)이 되어 봄옷이 지어지면, 성인(관례를 치른 자) 5, 6명과 어린아이 6, 7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쐰 뒤, 시(詩)를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
공자께서 크고 깊게 탄식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점(點)과 뜻을 같이 하겠다.”
세 사람이 먼저 나가고 증석이 뒤에 남아 여쭈었습니다. “저 세 사람의 말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각자 자신의 뜻을 말했을 뿐이다” 하셨습니다. 증석이 “선생님께서는 어찌 유(由, 자로)의 말에 웃으셨습니까?”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라는 예(禮)로써 다스려야 하는데, 그의 말이 겸양(謙讓)하지 않기에 웃은 것이다.”
“그렇다면 구(求)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닙니까?” “어찌 사방 6, 70리나 5, 60리의 영토가 나라가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적(赤)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닙니까?” “종묘의 제사와 제후의 회맹이 제후국의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적이 작은 일을 한다면 대체 누가 큰 일을 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