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약의 탈을 쓴 한의학의 지혜: ‘레일라정’에 숨겨진 꼼수와 진실

병원에서 관절염 처방전을 받아 든 환자들은 ‘레일라정(Layla Tab.)’이라는 세련된 영문 이름표에 안도한다. 최첨단 서양의학이 빚어낸 혁신적인 화학 합성물질이 자신의 닳아버린 연골을 매끄럽게 고쳐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 작고 매끄러운 알약의 껍질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현대 의학의 흥미로운 모순이자 ‘꼼수’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레일라정은 화학 공장에서 뚝딱 만들어진 신물질이 아니다. 고(故) 배원식 한의사가 평생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창방한 관절염 한약 처방을 25% 에탄올로 추출해 알약 형태로 뭉쳐 놓은, 뼛속까지 순수한 ‘한약(韓藥)’이다. 당귀, 모과, 방풍, 속단, 오가피, 우슬, 위령선, 육계, 진교, 천궁, 천마, 홍화. 처방전을 가득 채운 이 12가지 약재의 면면을 보면, 왜 서양의학이 한의학의 지혜를 은근슬쩍 빌려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 한계와 해답이 명확해진다.

진통(鎭痛)의 한계, 재생(再生)의 부재

현대 서양의학의 관절염 치료는 주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에 의존한다. 이는 통증을 유발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하여 즉각적으로 신경을 마비시키는 훌륭한 스위치 차단기다. 그러나 이 차단기는 위 점막을 보호하는 물질까지 함께 차단하여 극심한 속쓰림과 위장 장애를 유발한다. 더 뼈아픈 사실은, 통증만 덮어둘 뿐 닳아버린 연골을 재생하거나 관절의 자생력을 회복시키는 ‘근본 치료’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서양의학이 백기를 들고 한의학의 처방을 차용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레일라정을 구성하는 12가지 약재는 단순히 통증을 억제하는 단일 성분이 아니다. 몸 전체의 균형을 바로잡는 정교한 오케스트라와 같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원리로 관절을 재건하다

이 처방의 뼈대를 해체해 보면 동양의학의 정수가 그대로 드러난다. 관절염의 근본 원인을 다스리는 원리는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다.

제해: 위론(痿論)

위(痿)는 팔다리가 시들고 약해져서 힘을 쓰지 못하는 병증(病證)을 뜻한다. 오장(五臟)의 열(熱)로 인해 발생하는 위증(痿證)의 원인(原因)과 기전(機轉), 그리고 치료(治療) 원칙(原則)을 논(論)하고 있으므로 위론(痿論)이라 하였다.

소제목: 오장(五臟)과 인체(人體) 조직(組織)의 관계(關係)

원문:

黃帝(황제) 問(문)曰(왈) : 五(오)藏(장)使(사)人(인)痿(위)何(하)也(야)?

岐伯(기백) 對(대)曰(왈) : 肺(폐)主(주)身(신)之(지)皮(피)毛(모), 心(심)主(주)身(신)之(지)血(혈)脈(맥), 肝(간)主(주)身(신)之(지)筋(근)膜(막), 脾(비)主(주)身(신)之(지)肌(기)肉(육), 腎(신)主(주)身(신)之(지)骨(골)髓(수).

역문:

황제(黃帝)가 묻기를 : 다섯 장부(臟腑)가 사람에게 위증(痿證)을 일으키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기백(岐伯)이 대답하기를 : 폐(肺)는 몸의 피모(皮毛)를 주관(主管)하고, 심(心)은 몸의 혈맥(血脈)을 주관(主管)하고, 간(肝)은 몸의 근막(筋膜)을 주관(主管)하고, 비(脾)는 몸의 기육(肌肉)을 주관(主管)하고, 신(腎)은 몸의 골수(骨髓)를 주관(主管)합니다.

주석:

간(肝)은 인대(靭帶)와 힘줄(筋)의 자양(滋養)을 책임(責任)지고, 신(腎)은 뼈(骨)와 골수(骨髓)의 생장(生長)을 주관(主管)한다. 관절(關節)의 통증(痛症)과 퇴화(退化)를 겉으로 드러난 표(標)로 본다면, 그 근본(根本)이 되는 간(肝)과 신(腎)의 기운(氣運)을 보충(補充)하는 것이 본(本)을 치료(治療)하는 방법(方法)이다. 이는 소문(素問) 표본병전론(標本病傳論) 등에서 다루는 표본동치(標本同治) 원리(原理)의 가장 확실한 경전(經典)적 근거(根據)가 된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레일라정의 약재들은 다음과 같이 작용한다.

첫째, 뚫고 청소한다 (거풍습 祛風濕·활혈 活血).

관절에 쌓인 찌꺼기(어혈)와 찬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위령선, 진교, 당귀, 홍화가 투입된다. 막힌 혈로를 뚫어 미세 혈류량을 극대화함으로써 염증 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선봉장 역할을 한다.

둘째, 근본을 채워 재생한다 (보간신 補肝腎·강근골 强筋骨).

앞서 살펴본 황제내경의 원리처럼, 뼈와 인대는 간과 신장의 주관하에 있다. 오가피, 우슬, 속단은 닳아버린 연골과 늘어난 인대에 영양을 공급하여 조직을 근원적으로 튼튼하게 재건한다. 끊어진 것을 잇는다는 뜻의 속단(續斷), 소의 무릎을 닮아 관절에 기운을 집중시키는 우슬(牛膝)의 배합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셋째, 부작용을 통제하는 조화(調和)의 묘리.

진통소염제 특유의 위장 장애가 없는 이유는, 맹렬하게 병사(病邪)를 공격하는 약재들 사이로 당귀, 육계 같은 따뜻한 보약들이 위장과 신경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기 때문이다.

껍데기는 서양의학, 알맹이는 한의학

양의사들은 한약을 ‘비과학적’이라 폄하하면서도, 환자들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한약 추출물을 ‘천연물 신약’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둔갑시켜 처방을 날리고 있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환영할 일이나, 그 뿌리와 원리를 애써 감추려는 얄팍한 네이밍(Naming)은 씁쓸함을 남긴다.

진정한 치유는 기계의 녹슨 부품을 갈아 끼우듯 통증 스위치만 끄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다스리는 동시에 근본 원인을 뿌리 뽑는 ‘표본동치(標本同治)’의 지혜. 서양의학의 이름표를 달고 팔리는 레일라정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메시지는,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의학의 묵직한 가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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