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삶의 습기를 말려버리는 따뜻한 향기: 화습(化濕)의 철학

비 오는 날 젖은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몸이 무겁고, 입맛이 없으며, 머리가 안개 낀 듯 맑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뚜렷한 병은 없는데 만사가 귀찮고 영혼마저 축축하게 가라앉는 기분. 한의학에서는 이처럼 몸과 마음의 한가운데(中焦, 비위)에 무거운 물안개가 끼어 소통을 막아버린 상태를 ‘습조중초(濕阻中焦)’라고 부릅니다.

장정모 교수의 제38강에 등장하는 ‘화습약(化濕藥)’들은 바로 이 지독한 삶의 습기를 거둬내는 약초들입니다. 곽향, 사인, 백두구 같은 이 약초들은 물리적인 공격으로 물을 빼내지 않습니다. 대신 따뜻한 성질(溫)과 향기로운 기운(芳香)으로 꽉 막힌 길을 열어줍니다. 몸속의 습기를 다스리는 이 우아한 방식 속에는, 무기력에 빠진 우리 삶을 구원하는 깊은 통찰이 숨어 있습니다.

1. 비가 너무 많이 온 것인가, 내 마음의 하수구가 막힌 것인가

우리 삶에 축축한 습기(우울, 무기력, 소화불량)가 차오르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외부의 스트레스와 시련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 마음의 배수 용량을 초과했을 때입니다. 둘째는 비는 적게 오는데, 내 마음의 하수구(비위의 운화 기능)가 꽉 막혀버려 작은 슬픔조차 흘려보내지 못하고 고여버렸을 때입니다(비허생습 脾虛生濕). 무기력의 웅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는 흔히 쏟아지는 비(외부 환경)만 원망합니다. 하지만 화습의 철학은 먼저 내면의 하수구가 막히지 않았는지 점검하라고 말합니다. 내 삶의 소화력, 즉 닥쳐온 현실을 수용하고 흘려보내는 내면의 기능(運化)을 회복하는 것이 습기를 걷어내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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