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남은 어디서 다시 시작되는가: 종시(終始)가 가리키는 통찰의 벼리

우리는 늘 무언가의 끝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실패로 끝나는 것, 병들어 끝나는 것, 관계가 끝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현상을 연장하려 발버둥 친다. 그러나 5천 년 전의 의학 고전 영추 제9편 종시(終始)는 시간과 생명을 직선이 아닌 거대한 원형의 궤도로 바라본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을 잉태하는 자리이며, 생명이란 끝과 시작이 영원히 맞물려 돌아가는 위대한 순환이라는 것이다.

안팎의 어긋남을 재는 서늘한 저울

고전은 병의 뿌리를 찾기 위해 촌구(寸口)와 인영(人迎)이라는 두 가지 맥을 비교한다. 오장의 상태를 보여주는 안쪽의 척도와 육부의 상태를 보여주는 바깥쪽의 척도를 저울질하여, 어느 쪽이 몇 배나 더 비대해졌고 어느 쪽이 텅 비어 있는지를 서늘하게 계산해 낸다. 안이 무너져 밖으로 넘치는지, 밖의 사기가 안을 짓누르는지 그 어긋남의 배수를 정확히 읽어내야만 비로소 치유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우리의 삶과 경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내실은 텅 비어 있는데 외부의 확장만 맹렬하게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혹은 외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내부의 아집에만 갇혀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지 않은가. 안팎의 균형이 무너져 내리는 징후를 읽어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자는, 의사이든 리더이든 결국 생명과 조직을 파국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고요함 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자의 칼끝

치유의 예술은 찌르는 기술 이전에, 물러서고 기다릴 줄 아는 엄격한 절제에서 완성된다. 종시 편은 분노했을 때, 술에 취했을 때, 피로할 때, 주리거나 배부를 때,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에는 결코 침을 들지 말라고 경고한다. 마음의 기조가 흔들리고 육체의 기운이 탁해졌을 때 내지르는 칼끝은 사기를 물리치기는커녕 도리어 남은 진기마저 흩어버리기 때문이다.

위대한 통찰은 소란스러움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의사가 침을 쥘 때는 깊고 고요한 곳에 거처하듯 문을 걸어 잠그고 오직 신명과 왕래하며 의식을 흩뜨리지 않아야 한다고 고전은 말한다. 흩어진 기운을 거두어들이고 뭉친 기운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찌르는 자의 내면이 먼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고 단단해야 한다. 위기와 혼란이 닥쳤을 때 섣불리 움직이기보다, 스스로의 호흡을 가다듬고 정기가 서서히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고도의 인내가 필요한 까닭이다.

평인(平人), 가장 위대한 균형의 완성

고전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은 어떤 기적적인 초인이 아니다. 사계절의 흐름에 맞춰 맥박이 뛰고, 몸의 안팎이 한온의 변화 속에서도 평형을 잃지 않으며, 형태와 기운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사람. 바로 아무런 병이 없는 온전한 평인(平人)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질병의 마침표는 건강의 새로운 시작이다. 내 삶의 촌구와 인영은 지금 어떠한 비례로 흔들리고 있는가. 섣부른 조급함을 내려놓고, 깊고 고요한 통찰의 벼리를 쥐어야 할 때다. 끝과 시작이 맞물려 돌아가는 이 거대한 섭리 앞에서, 우리는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날 기회를 얻고 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