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가장 민감한 단어는 ‘회개’가 아니라 ‘돈’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원하십니다”라고 설교하면서도, 결국 그 마음의 증거는 통장에서 이체된 헌금 액수로 증명하라고 강요한다. 언제부터 신(God)이 인간의 돈에 그토록 굶주린 거지가 되었는가? 구약의 무덤에서 파낸 십일조 교리와, 탐욕을 비전으로 포장한 기복신앙. 신의 이름을 팔아 거대한 부동산을 쌓아 올린 종교 카르텔의 영적 사기극을 해체한다.
1. 원문 직역 (마가복음 11:15-17 및 마태복음 6:24)
예수께서 성전(聖殿)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賣買)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床)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萬民)이 기도(祈禱)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强盜)의 소굴(巢窟)을 만들었도다.” (마가복음 11:15-17)
“아무도 두 주인(主人)을 섬길 수 없다… 너희가 신(神)과 재물(맘몬, Mammon)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6:24)
2.종교 자본주의와 영적 매춘
십일조(Tithe)는 본래 구약 시대에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 지파와 고아, 과부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안된 이스라엘의 ‘사회 보장 세금’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율법의 휘장을 찢었을 때, 성전 중심의 이 세금 제도 역시 생명을 다했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이 폐기된 영수증을 다시 꺼내 들었다. 교인들의 죄책감과 탐욕을 교묘하게 자극하여 거대한 건물을 올리고 목사의 제국을 유지하는 ‘종교 자본주의’의 연료로 삼았다.
“십일조를 내면 30배, 60배로 갚아주신다.” “야베스의 기도처럼 지경(부동산)을 넓혀주신다.” 이것은 복음이 아니다. 신을 수익률 좋은 ‘투자처’로 전락시키고, 헌금을 사업 성공을 위한 ‘투자금’이나 지옥행을 막는 ‘보호비(삥)’로 변질시킨 영적 매춘(Simony)이다. 예수가 성전에서 채찍을 들고 상을 둘러엎었던 바로 그 강도들의 소굴이 지금의 교회다.
3. 광야의 일갈
신은 당신의 푼돈에 관심이 없다. 신에게 바친다는 명목으로 종교 카르텔의 배를 불리는 헌금을 당장 멈춰라.
우리의 재정은 0원(Zero Finance)이어야 한다. 돈이 고이는 곳에 반드시 썩은 권력이 싹트기 때문이다. 진짜 헌금은 위(교회 조직)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옆(가난한 자)으로 조용히 흘려보내는 것이다.
자신의 탐욕을 비전(Vision)으로 포장하지 마라. 축복을 구걸하는 노예가 되지 마라. 광야의 단독자들은 결코 신의 이름으로 장사하지 않는다.
– 광야에서, Laot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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