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누가 만들었는가: 20대 우경화와 기성세대의 뼈아픈 청구서

최근 우리 사회를 달구는 뜨거운 감자 중 하나는 단연 2030 세대, 특히 20대 청년층의 보수화 혹은 우경화 현상입니다. 많은 언론과 정치권이 이를 두고 젠더 갈등이나 얄팍한 포퓰리즘의 결과로 치부하거나, 그들의 ‘이기주의’를 탓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현상의 겉면만 핥는 게으른 진단에 불과합니다. 이들의 우경화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파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교육 실패’와 부모 세대가 자행한 ‘가정교육의 붕괴’가 결합하여 잉태된 필연적 결과물입니다.

우리의 공교육은 오랫동안 ‘시민’을 길러내는 대신 ‘경쟁자’를 생산하는 컨베이어 벨트로 전락했습니다.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옆자리의 친구를 밟고 일어서야만 살아남는 교실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공동체적 연대는 사치스러운 단어였습니다. 오랜 기간 교육 현장의 민낯을 지켜봐 온 입장에서, 지금의 청년들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연대를 ‘나의 몫을 빼앗는 불공정’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철저히 교육 시스템의 참담한 실패입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원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안방에서 시작된 기득권의 위선과 환멸

더욱 뼈아픈 것은 부모 세대의 가정교육 실패입니다. 민주화와 진보를 외치며 사회의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이른바 86세대 부모들은, 밖에서는 평등과 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안방에서는 내 자식만의 성공과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된 이중성을 보였습니다. “너만은 손해 보지 마라”, “일단 좋은 대학 가고 보아라”라는 세속적 성공 지상주의가 가정교육의 전부를 차지했습니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거대한 위선을 목도하며 자랐습니다. 이들의 우경화는 전통적 의미의 보수 이념에 대한 확고한 지지라기보다는,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자원과 기회를 독점한 ‘위선적 기득권’에 대한 격렬한 환멸이자 징벌적 반발에 가깝습니다. 부모에게 배운 대로 각자도생의 룰을 충실히 따랐을 뿐인데, 이제 와서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기성세대의 태도에 청년들은 깊은 분노를 느낍니다.

벼랑 끝에서 움켜쥔 ‘절차적 공정’이라는 생존 본능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추고도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 부동산 폭등으로 인해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된 이들에게 남은 마지막 동앗줄은 ‘절차적 공정’뿐입니다. 자원이 고갈된 척박한 운동장에서, 이들은 결과의 평등이나 사회적 배려를 골자로 하는 정책들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폭력이나 역차별로 간주합니다.

공정이라는 가치가 연대와 포용을 압도해 버린 작금의 현실은 청년들의 인성 결함이 아니라, 생존의 벼랑 끝에 선 자들의 필사적인 방어기제입니다. 사다리가 끊어진 사회에서 옆 사람의 손을 잡아줄 여유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기성세대의 안이하고 오만한 발상입니다.

결론: 손가락질을 멈추고 거울을 보라

청년들의 우경화를 탓하기 전에 기성세대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었는가. 이기심을 조장한 교실과 이중적인 잣대를 강요한 가정, 그리고 희망이 거세된 사회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기성세대입니다. 청년들의 차가운 보수화는 우리가 과거에 발행한 뼈아픈 청구서가 지금 우리 앞에 도착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 손가락질을 멈추고 거울을 봐야 할 때입니다. 기성세대의 통절한 자기반성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 세대 간의 단절과 갈등을 봉합할 길은 요원합니다. 반성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이 각자도생의 괴물을 잉태한 낡은 시스템 중 가장 치명적인 것부터 하나씩 해체해 나가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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