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학보사 기자 시절, 지면에 ‘광주’를 어떻게 올리느냐는 우리들의 초미의 관심사이자 가장 치열한 투쟁이었다. 억압된 진실을 활자로 새기기 위해 우리는 ‘광주 5·18’로 조심스레 운을 뗐고,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마침내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제 이름을 올리기까지 실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시대의 상흔을 단어 하나에 담아내는 일은 그토록 무겁고 엄중한 책임을 요구했다.
그렇기에 최근 스타벅스 코리아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즈음에 내놓은 이른바 ‘탱크데이’ 사태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 대중을 경악하게 한다. 피 흘려 쟁취한 무거운 역사를 상업적 기발함에 매몰되어 너무나도 가볍게 취급했기 때문이다. 군사 정권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탱크’라는 단어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를 연상시키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의 결합은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그 파장이 너무나 크다. 이는 명백한 인문학적 참사다.
가장 뼈아픈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이 기획이 최종 결재를 통과했는가?” 기업에는 수많은 의사결정 단계와 리스크를 검증하는 게이트키퍼들이 존재한다. 이 문구가 기획에서부터 디자인, 마케팅 총괄, 그리고 최종 승인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는 것은 기업 내부의 자정 작용과 소통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었음을 방증한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경직된 조직 문화, 혹은 성과주의에 함몰되어 리스크를 보지 못하는 조직의 맹점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시스템의 붕괴는 결국 리더십의 철학 부재로 귀결된다. 기업의 메시지가 대중에게 닿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공유하는 역사적 맥락과 트라우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간과한 채 비극적 역사를 가벼운 언어유희나 상업적 도구로 소비하려 한 것은 인문학적 소양의 완전한 결여를 보여준다. 역사와 철학을 외면한 기업은 언제든 시한폭탄을 안고 달리는 것과 같다. 기업의 사회적 감수성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본사의 오만한 실책이 낳은 대가는 가장 약한 곳으로 향했다. 대중의 거센 항의와 분노는 매장 최전선에서 일하는 파트너들의 몫이 되었다. 내부의 사기는 꺾였고, 브랜드는 정치적 이념 대립의 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리더십의 실패가 엉뚱한 이들의 고통으로 전이되는 뼈아픈 역설이다.
대중이 분노하는 것은 문제의 문구 자체를 넘어, 그것을 걸러내지 못한 뻔뻔한 조직 시스템이다. 오늘 발표된 알맹이 없는 사과문은 그 시스템이 여전히 고장 나 있음을 증명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변명이 아니라 철저한 단죄다. 최고 경영자는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며 즉각 2선으로 후퇴하는 쇄신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아울러 상업적 기발함에 취해 인문학적 감수성을 내팽개친 마케팅 실무진부터 무능한 결재 라인 전체에 이르기까지, 전례 없는 수준의 강도 높은 인사 조치가 단행되어야 한다. 썩은 뿌리를 그대로 둔 채 가지치기만 해서는 나무를 살릴 수 없다. 책임을 지는 자가 없는 조직에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