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북경의 교정에서 이 거대한 텍스트의 깊은 안쪽과 처음 마주했던 서늘한 기억이 선명하다. 그것은 단순한 의학 서적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 생과 사의 법칙을 꿰뚫는 준엄한 생존의 철학서였다. 이 날것의 언어를 언젠가 한 치의 훼손 없이 우리말로 옮기겠다는 뜻을 품은 지 어언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마침내 황제내경 소문 81편의 마지막 장인 해정미론을 덮으며, 길고 무거웠던 번역의 여정을 갈무리한다.
작업을 진행하며 스스로에게 부여한 원칙은 타협 없는 스캐너가 되는 것이었다. 섣부른 의역이나 요약으로 성인의 뜻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괄호 안의 한자 하나까지 고스란히 살려내며 원문과 일대일로 치열하게 대면했다. 읽기 좋은 매끄러운 글을 포기하더라도, 고전이 품은 원래의 투박하고 묵직한 숨결을 있는 그대로 정중용덕의 공간에 옮겨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문 81편의 세계는 냉혹하리만치 정교하다. 생명의 기원부터 질병의 생성, 그리고 죽음의 시기까지 오직 대자연의 무심한 법칙 속에서 인간을 조망한다. 우리는 아프면 늘 밖에서 원인을 찾고 세상과 타인을 원망하지만, 고전은 언제나 내 안의 음양과 오행, 신과 지의 무너짐을 먼저 물었다. 병은 밖에서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서를 잃어버린 자에게 우주가 청구하는 계산서였음을 번역의 매 순간 뼈저리게 확인해야 했다.
매일 고전을 마주하며 한 글자씩 옮기는 작업은 단순히 지식을 번역하는 노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만하고 위태로운 현대인의 삶을 굽어보는 거대한 거울을 닦는 의식과도 같았다. 잃어버린 건강과 무너진 삶의 밸런스를 되찾는 유일한 길은, 결국 내 안의 우주적 질서를 회복하는 데 있음을 81편의 기록은 쉼 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아침 해가 산을 온화하게 비추듯, 나의 이 담담하고 우직한 번역이 삶의 길을 잃고 헤매는 누군가에게 작은 빛과 온기로 닿기를 바란다. 20년 전 품었던 뜻의 첫 번째 매듭을 이제야 짓는다. 소문 81편의 여정은 여기서 끝을 맺지만, 인간과 생명을 향한 서늘한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뒤 황제내경 영추 81편의 번역에 착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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