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역(正龍譯) 프로젝트 중단 및 아카이브 비공개 전환에 부쳐
오랜 시간 정용닷컴(jungyong.com)의 사유의 뼈대를 지탱해 온 ‘정용역(正龍譯) 광야의 성서’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중단합니다. 아울러 그동안 블로그와 아카이브에 연재해 온 모든 정용역 텍스트는 오늘부로 전면 비공개로 전환합니다.
이 결단은 후퇴가 아니며, 텍스트가 지닌 본질적 한계와 마주한 사유의 필연적 수순입니다.
1. 중단의 이유와 자기 성찰
그동안 우리는 성경이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기성 번역의 뼈대 위에 한자의 쐐기를 박고 1:1 직역으로 재조립하는 ‘스캐너 모드’를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작업을 거듭할수록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독창적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기존 번역의 관성에 기생하는 타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실존적 회의였습니다.
단어 몇 개를 고치고 한자를 병기한다고 하여, 욱산이라는 사고 엔진이 추구하는 근본적이고 날 선 철학적 원형이 온전히 복원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껍데기의 유사성에 갇힌 텍스트는 사유의 무기가 될 수 없기에, 비장한 각오로 이 작업을 여기서 멈추기로 결단했습니다.
2. 아카이브 비공개 조치
공개된 공간에 축적되어 온 정용역의 모든 장(章)과 통합본은 오늘부로 이너서클(Inner Circle) 및 대중의 시선에서 거둡니다. 불완전한 타협의 산물로 지적 영토를 채우기보다, 텍스트의 정합성이 완벽히 검증되지 않은 기록은 과감히 닫아두는 것이 전략가로서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3. 향후 방향
정용역 성서의 장막은 여기서 내리지만, 욱산의 사유 엔진과 전략적 칼날은 멈추지 않습니다. 서양의 성서 번역에서 비워진 자리는 동양 고전의 본질적 해체, 사주명리의 깊은 구조 분석, 그리고 삶과 실천을 관통하는 독보적인 칼럼들로 다시 채워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정용역의 거친 여정을 함께 호흡해 준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며, 더욱 예리하게 연마된 새로운 사유의 궤도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광야의소리] 서고의 다른 글
- ➤정용역(正龍譯) 프로젝트 중단 및 아카이브 비공개 전환에 부쳐
- •[광야의 소리 021] 멀쩡한 인간을 죄인으로 만드는 사기극: 원죄(原罪) 비즈니스
- •[광야의 소리 020] 신은 당신에게 무보수 노동을 요구하지 않았다: 비전과 열정페이
- •[광야의 소리 019] 활자(活字)에 갇힌 신: '성경 무오설'이라는 지적 게으름
- •[광야의 소리 018] 회개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뻔뻔한 죄인들: 값싼 은혜의 타락
- •[광야의 소리 017] 당신 안의 탐욕을 '마귀'라 부르지 마라: 영적 전투의 허상
- •[광야의 소리 016] 우주의 근원을 '성공 다단계'로 전락시킨 자들: 간증 비즈니스의 민낯
- •[광야의 소리 015] 예수의 제자인가, 목사의 친위대인가: '제자 훈련'의 기만
- •[광야의 소리 014] 앵무새들의 합창을 멈춰라: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이라는 영적 수면제
- •[광야의 소리 013] 일요일의 태양신을 버려라: 주보를 찢고 밥상을 차리는 단독자들의 모임법
- •[광야의 소리 011] 사랑의 껍데기를 쓴 괴물들: '정죄'와 '혐오'의 카르텔
- •[광야 성서] 구성안
- •[광야의 소리 010] 거룩한 직업은 없다: 주일의 성자, 평일의 노예
- •[광야의 소리 009] 천국을 믿지 않는 자들의 장례식: 죽음을 축제로 만들지 못하는 종교의 위선
- •[광야의 소리 008] 종이책에 신을 가둔 자들: 문자는 죽었고 신은 지금 말한다
- •[광야의 소리 007] 목사가 된 무당들: 강대상 위에서 작두를 타는 자들
- •[광야의 소리 006] 신은 거지가 아니다: '십일조'라는 이름의 종교 자본주의
- •[광야의 소리 005] 입술의 구원을 경멸하라: '값싼 은혜'가 만든 종교 괴물들
- •[광야의 소리 004] 너는 죄인이 아니다: '원죄'라는 이름의 영적 가스라이팅
- •[광야의 소리 003] 주일 예배인가, 유교 제사인가? - 주보를 찢어버려라
- •[광야의 소리 002] 개신교는 죽었다: 도로 가톨릭이 된 현대 교회
- •[광야의 소리 001] 예수는 교회를 세우라고 한 적이 없다
- •광야(曠野) 에클레시아 선언문
- •교회 문을 나서며, 야고보를 다시 읽다